B. 교육/4. 책 읽기

[스크랩]전도와 사회참여. 조종남

양선재 2018. 1. 19. 12:00


"전도와 사회참여" (조종남 교수의 로잔언약 해설서) 를 읽고 - 이제서야 로잔언약의 중심사상에 접근하는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이 글을 올립니다.| 일상의 영성

오묘한 | 조회 141 |추천 0 | 2011.09.30. 11:36

전도와 사회참여  by 조종남


 참 오래된 책이다. 1986년에 출판된 책인데 언제 구입했는지 어떻게 나의 서재에 꼽혀 있게 됐는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최근 ‘사회선교’라는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단어에 대해 곱씹어 보다가 관련 책이 있을까 하고 서재를 죽 훑어보다가 이 책의 제목에 이끌려 꺼내보았다. 누렇게 종이색이 변해 있을 정도로 오래 묶어 있었다. ‘사회참여’라는 말은, 잘은 모르면서도 오히려 진부한 주제라 여기고 읽어보지 않고 처박아 두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서문을 읽어보니 눈이 번쩍 뜨이는 책이다. 그동안 찾아다녔던 로잔 언약에 대한 설명서인 것이다. 내년(2013)에 있을 WCC대회를 두고 왈가왈부 말이 많은 중에 오히려 로잔언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단편적인 지식 모으기 정도로 자족하고 있던 차에 제대로 로잔언약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뻗으면 닿는 나의 책장에서 말이다.

  저자의 약력에 세계 복음주의 협회(WEF) 신학위원회 부회장 역임. 세계복음화 도잔위원회(로잔위원회의 오타가 아닐까?) 국제자문위원 아시아위원회 회장. 이라고 나와 있다. 이쯤 되면 로잔언약 해설서를 쓸 만한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1974년 로잔 언약 이후로 세계 복음주의 교회 진영에서 로잔 언약의 의의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그 교회들에게 로잔언약의 해설서를 내어놓아 그 분분한 의견에 일조를 하겠다는 의지로 이 책을 쓴 것이다.


 이 논문은 바로 교회 선교에서의 전도와 사회 참여의 관계를 다루기 위해 1982년 6월에 미국 그랜드 래피드에서 40명의 신학자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협의한 회의에서 읽은 주제 논문의 하나로 ......

  젊은 신학도들로부터 선교에서의 로잔 언약과 해설에 대한 소개 요청을 받고 .....

  이 로잔 언약은 혼란을 이루고 있는 오늘의 선교 신학과 그 문제에 있어 좋은 지침이 되리라고 믿는다.


 위 서문의 내용에서 이 책의 주제와 목적을 알 수 있다. 선교에 관한 정책적 방향에 대한 물음에서 이 책이 나온 것이다. 목차를 보면 크게 세부분으로 되어 있다.


 1. 교회 선교에서의 전도와 사회 참여  2. 로잔 언약 해설    3. 교회와 국가에 관한 바젤 서신


 선교에 관한 물음에 대하여 일조하고자 하는 책의 목적이 목차에 잘 나와 있다.

15개 항목의 로잔 언약에 대한 해설을 2부로 넘기고 그 항목중 5항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해설과 주장을 따로 1부에 실었다. 즉 저자의 관심은 온통 ‘사회선교’에 있다. 그러면 나의 가려운 부분을 제대로 긁어줄 책을 집은 것이다. 로잔언약과 그의 핵심 내용인 ‘사회선교’를 작은 한 책에서 다 해결을 보다니. 사실 로잔에서의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의 취지 자체가 ‘사회 선교’를 위한 것이니 알고 보면 두 가지 주제를 한 번에 해결한 것은 당연한 것일게다.

 우선 이 책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간단한 역사적 사실은 1966년 ‘세계 복음과 국제대회’는 전형적인 복음주의적 선교의 정의를 내린다.

   ‘베를린 대회에서 말하는 한 과제(One Graham)라는 것은 교회와 관련된 전도를 의미했던 것이다.’(27p)

 베를린에서의 성명은 전도의 사명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리라. 아마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전도에 대한 의미의 변형과 퇴색을 염두에 두고 진행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아쉬움으로 남은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못한 것이다.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자칫 에큐메니칼 진영의 목소리와 구분이 가지 않는 에매한 입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 때문에 1966년의 베를린 대회는 미완성이 되고 만다. 1974년 로잔에서의 대회는 이 숙제를 완벽하게 해 내게 된다. 아마 로잔 대회는 이 숙제를 제출하기 위한 대회가 아닐런지 생각해 본다.

  ‘1974년 복음주의자들은 세계 복음화 국제 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전도에 대한 성경적 입장을 밝히고 전도와 사회 책임과의 관계를 설명하려는 데 있었다.’(16p)


그럼 로잔 언약의 입장은 무엇인가? 로잔에서는 선교라는 용어를 봉사라는 용어로 바꾼다.(17p)

 ‘로잔 언약의 한 곳에서, 교회 선교를 희생적인 봉사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전도와 사회-정치 참여 둘 다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1966년의 베를린 대회에서 선교의 개념이 진일보한 것을 볼 수 있다. 전도 뿐만 아니라 사회참여를 선교의 장으로 여긴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명시하는 것이다.

  로잔 언약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로잔 언약은 전도가 교회 선교에서 우위성을 차지한다. 희생적인 교회 선교에 있어 전도는 가장 중요하다. 교회는 하나님의 우주적 목적의 바로 중심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는 도구로 지정하신 곳이다. 또한 로잔은 정치적 해방이 구속론적 의의로 이해되는 것을 피하며, 정치적 화목이 하나님과의 화목이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구원이 아니라고 기록하였다.’(32p)

  우선순위를 매김에는 분명히 자유주의 신학인 '낙관주의적 사회 복음’에 대한 견제를 하기위한 목소리일 것이다.(34p) 저자는 우선순위를 매기면서도 선교의 폭을 전도 + 봉사(선교)로 분명하게 못을 박는 것을 잊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은 사랑의 대계명으로 정당화하고, 전도는 대분부(Great Commission)로서 정당화하여 무게 중심을 대등하게 둔다. 또한 스나이더의 말을 인용해서 전도와 사회 관심은 복음의 본질적인 두 면이라고 한다. 

  이상 로잔 언약의 핵심 이슈인 전도와 사회 참여에 대한 저자의 해설적 입장을 요약해 보았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개교회에서는 또 다른 의견의 분분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그리스도인이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그 책임이 각각의 개인에게 있는냐, 아니면 교회(집단 혹은 공동체)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개인의 소명(vocation) 즉 직업에서 행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공동체)가 사회적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로잔언약에 대한 해석이다. 오히려 교회 공동체가 개인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를 양성하여 위원회로 하여금 복잡한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할 수 있게 하는 것 등이 교회 공동체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가 사회참여를 실행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사회의 특정한 단체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거나 편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참여 목적이 목회적 차원을 넘어서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전도의 우위성을 한 번 더 강조하는 것으로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아마 사회참여의 신학적 의미가 경계를 넘어설까 매우 염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부의 요약

  로잔 언약에서 그리스도의 책임이 개인에게서 교회에게로 옮겨왔다.

  그럼에도 전도를 통한 사랑의 변화 없이는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헛된 일이다.(전도의 우위성)


우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1부의 내용을 나의 주관적 시각으로 요약해 보았다. 보수교단의 목회자인 내가 보았을 때에 거의 완벽하게 동의하는 내용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로잔에서의 대회와 그 언약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되었다고 본다. 단편적 정보가 아닌 대회의 의의적인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의 개최 배경에 대한 설명이 조금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정보는 또 다른 자료로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 참여’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과제요 의무인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일어났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답이 유출되었다. 자유진영에서 먼저 ‘사회참여’를 ‘사회복음’이라는 신학으로 무장하고 실천했기 때문일 것이다. 1966년 베를린 대회에서 ‘사회 참여’를 명시 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만큼 복음주의 진영에서 자유주의 진영을 심리적으로 경계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다.

  21세기인 현재도 마찬가지로 ‘사회 복음’을 위시해서 ‘사회 선교’, ‘사회 참여’,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들은 복음주의 진영에서 은근히 색깔 있는 안경으로 쳐다보는 것들이다.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과거나 현재나 여전하다. 나 역시 약간의 부담스러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회 복음’이나 ‘사회 선교’나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이냐? 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중이었다. 이 책으로 인해 분명한 복음주의적 신학의 가치를 고수하면서 ‘사회 선교’라는 단어를 편하게 사용될 것 같다.

  이 책은 작아서 읽기가 편하다. 또한 내용이 매우 간결하고 압축적이어서 사실 요약이 불가능할 정도다. 위에서 정리한 내용 외에도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있다. 꼭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