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한몸살이/ 공동체 일반

[스크랩]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 함께 하는 탈주에는 유쾌함이 있다

양선재 2014. 8. 2. 14:21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 함께 하는 탈주에는 유쾌함이 있다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아름다운마을공동체 이야기

함께 하는 탈주에는 유쾌함이 있다

이런 저런 지면에 공동체가 소개되면서(영상 매체는 극구 사양하지만, 글로 소개하고 소개받는 일은 종종 있다.) 아무런 연고가 없음에도 공동체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다. “어디서부터가 공동체요?”라는 질문에 처음엔 당황했다. 공동체의 영역을 알리는 ‘표지’ 없음으로 그 분들은 헷갈리셨던 거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강북구 인수동 북한산 아랫마을 곳곳에 살고 있다. 어디부터 공동체라는 표지는 없다.

공동체는 마음이다. 똑바른 정신 가지고 배운 대로 양심껏 살도록 그냥 두지 않는 세상을 향해, 사기 치거나 미치거나 하지 않고는 살기 어려운 세상에, ‘나 이렇게 살지 않을래!’를 외치며 익숙했던 자리를 떠나온 이들의 마음이 모아진 것이 공동체다. 너무나 위풍당당하면서도 교묘한 제1권력, 자본 앞에 한 사람의 탈주는 무력하지만, 그 마음이 모여서 함께 하는 탈주는 힘이 있다. 함께 하는 탈주는 개체적 존재가 공동체적 인간으로 거듭나는 뼈아픈 자각과 고백이 곁들여진 유쾌한 여정이다.

안기홍 씨는 2002년 3월 아름다운마을에 들어왔다. 현재 기독청년아카데미와 서원 훈장을 맡고 있다. “5년 후, 1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주제로 꿈나눔을 한다. 그 때 계획했던 것들이 전부 실현됐다. 생각보다 빠르게.”

공동체는 마을이다. 물리적 토대를 함께 할 때, 함께 하는 탈주가 가능하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밤마실 다닐 수 있는 거리에 모여 산다. 출근길에, 산책하는 길에, 어디 나가는 길에 한두 명 꼭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된다. 밤사이 별일 없었는지, 아이 열은 내렸는지, 밥은 먹었는지, 이런 걸 꼭 챙기게 된다. 마을 입구에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고, 마을 어르신들이 앉아 담뱃대 물고 계시면 마을 드나드는 이들이 꼬박 꼬박 인사를 드리며 안부를 물었던 것처럼, 그렇게 서로의 기운과 안색을 살필 줄 아는 관계로 사는 것이다.

서로의 삶을 책임지는 관계로, 기초 공동체

마을공동체로 함께 하는 130여 명의 친구들은 마음이 맞는 언니 오빠 동생들끼리 11개의 기초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기초공동체로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의 삶을 책임지는 관계로, 그 만큼 애정을 갖고 긴밀하게 소통한다는 거다. 기초공동체별로 관심사에 따라 텃밭을 함께 가꾸거나, 지역 정치 운동에 집중한다거나, 기타를 함께 배우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내 지갑의 씀씀이, 남자 친구와의 연애 문제, 부모님과의 관계, 직장 생활과 쉼의 문제를 비롯해 온갖 소소하고 잡다한 듯 보이는 많은 문제들이 함께 나누고 서로 조언하고 격려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여 삶 나눔을 하는데, 이런 나눔을 하면서 한 사람이 현재 처한 정황에서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하고, 또 그 문제를 극복하면서 성숙해가기도 한다. 공동체로 함께 살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기도 하며, 시대의 우상에 휘둘리는 삶에 대해 깊은 자각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기초 공동체는 말 그대로 공동체로 함께 사는 삶을 위한 기초를 놓는 공동체이다. 8~10명으로 이루어진 기초 공동체에서 제대로 관계를 맺고, 제대로 배우고 가르치는 삶을 일궈가지 못하면, 공동체적 관계라는 것은 참으로 가벼운 깃털만도 못한 관계가 되고 만다. 부부로 함께 살아가면서 치열한 조절을 과정을 거치듯, 기초 공동체로 함께 살며 근원적인 자신의 과제와 극복해 나가야 할 태도들을 확인하고, 공동체와 함께 리듬을 맞추어 가는 거다.

한희정씨는 초등학교교사 로 육아휴직 2년차다. 아이 키우며 마을일을 돌보고 있다. “아름다운마을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내적 필요에 의해 여러 가지 요청이 생겨난다. 공동체도 생명체이기 때문에 그 시기에 따라 다르다. 그간 어린이집, 먹거리, 카페 등을 해결했고 지금은 중등과정과 귀촌 생산공동체에 전력투구 한다.”

생활 영성을 수련하는 일상적 구도자의 삶, 생활 공동체

공동체로 사는 것은 평생 ‘공부’하는 삶이다. 우리는 생활 영성 수련이라고 한다. 영성이라는 것이 거룩한 성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이런 수련의 과정에 생활 공동체가 있다. 미혼 청년들이 모여 사는 여성 공동체방과 남성 공동체방, 가정 공동체, 기혼 가정이 모여 사는 함께 사는 집, 생활 피정을 위한 수도원, 월급을 모두 한 통장으로 모아 공동재정으로 사용하는 기초생활공동체 등이 있다.

생활 공동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감추고 싶어 하는 나의 습이 고스란히 만천하에 드러나는 사건이다. 그것이 미혼들의 공동체방이든, 결혼한 가정이든 아니든 간에. 처음에는 부끄럽고 당황스럽고 어쩔 줄 몰라 하지만, 그래서 간혹 떠나버리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그런 드러남을 넘어서는 관계의 결이 만들어진다. 누군가의 어떤 기질을 넘어서서, 어떤 문제를 주목하고 진단하고 처방하는 민감성을 체득한 이들로부터 들려오는 메시지들이 공명하면서 만들어내는 흐름들이다. 때에 맞게 적절하게 만들어지는 이런 흐름들이 공동체를 생명력 있게 한다. 그것은 상하좌우를 떠난 역동적 사건이다.

생명의 줄, 밥을 함께 먹는 밥상 공동체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는 선조들의 지혜가 있듯이 밥상머리 만남은 서로의 생명을 살리는 줄이다. 직장 생활을 하든 안 하든, 결혼을 했든 안했든 마을에는 매일 밥상이 열리고, 점심 저녁 끼니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 많은 것이 사적인 공간으로 점유되어 있는 도시적 삶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만난다는 것은 강력한 관계적 힘을 만들어 준다. 사적 공간이 커야할 이유도 사라진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는 아이와 함께 안심을 하고 밥을 먹을 수 있고, 어린 아이를 혼자 돌봐야 하는 육아 주체들은 살림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아름다운마을 밥상; 김예슬선언 이전에 ‘신병철선언’이 있었다. 대학을 그만두고 밥집 사장님이 된 그. 취사병 시절 요리의 즐거움에 푹 빠져 살았다. “요리가 얼마나 재밌던지 다시 군대를 가고 싶더라고요.” 그렇다고 차마 군대를 갔으랴. ‘손맛’이 끝내주는 아름다운 청년 신형철은 아름다운마을에서 꿈을 이뤘다.

얼마 전까지 마을 밥상은 공동체가 운영하는 공적인 공간이었다. 공동체 친구들이 품앗이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요리사와 지킴이를 하고 공동체 친구들이 와서 먹는 형태였다. 지금은 군에서 취사병으로 행복하게 살았던 경험을 살려,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마을 밥상을 책임지고 운영하고 싶다는 친구가 운영하는 사적 소유의 공간이지만, 공적으로 누리는 공간이 되었다. 공동체의 공적인 사업으로 초기에는 함께 힘을 모아 지원을 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서서 수익 창출이 가능해지면, 주체를 세워 창업하는 형태로 간 것이다.

시대의 명을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 공동체

자본의 질서에서 가장 강고하게 우리 삶을 파고드는 것이 ‘교육’이라면, 그런 자본의 질서를 파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또한 ‘교육’이다. ‘교육비’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가정 공동체가 건강하게 살 수 있고, ‘배우고 가르치는 삶’이 바뀌어야만 새 시대를 품을 수 있다. 결혼한 선배 가정이 품앗이 육아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마을이 정해지고 미혼 청년, 참교육을 자기의 꿈을 품었던 친구들이 이주하면서 ‘공동육아 어린이집’, 마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주말계절학교’를 열었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방과 후 공부방’을 열었고, 자본의 힘에 너무나 무력한 학교 교육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와 함께 초등 대안학교를 열게 되었다. 초등 대안학교를 곧 졸업하게 될 6학년 친구들과 함께 내년에는 중등 과정을 열 계획이다.


어린이집 ; 2002년 4-5세 육아를 대상으로 주말육아를 시작했다. 마당이 있는 집을 싼 값에 구해 어린이집으로 독립했다. 마을의 삼촌, 이모들이 선생님이다. 3개월 된 아기부터 ‘애기똥풀반’에서 생활한다.

사적 소유였던 책을 모두 모아 만든 마을 도서관, 함께 공부하고 싶은 주제로 세미나를 하거나 개인 공부를 할 수 있는 마을 서원, 때에 맞게 적절하게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공부 모임들, 대안 대학을 향한 걸음을 걷고 있는 청년 아카데미 등이 모두 교육 공동체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교육 공동체는 곧 가르치는 대로 살아야 하고, 배우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엄중한 그 무엇이다. 엄마 아빠가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면 그 거짓된 삶은 곧바로 들통이 난다. 가르치는 자로 산다는 교사가 제대로 살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그 기만적인 삶은 바로 뽀록이 난다. 공동체에서 자란 아이들은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가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짓과 기만을 걷어낸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교육은 온실이 아니라 광야를 보여주는 것이다. 거센 사막의 폭풍 앞에서도 당당하고 유려하게 유쾌하게 자기 삶을 사는 생명이 되는 길이다.


아름다운마을 학교 ; 마을에서 함께 살기 위한 필요에 의해 어린이집, 방과 후 주말학교가 생겼듯이 아름다운마을 학교도 2008년 문을 열었다. 텃밭도 가꾸고 역사인물탐구도 배운다. 어느덧 마을에서 ‘공동육아’로 자란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중등과정을 준비 중이다. 참, 전교생 13명, 공동체 가정 어린이는 3명이다. 어린이집과 학교 모두 좋은 삶, 좋은 벗, 좋은 앎을 위해 찾아오는 이들에게 열려있다.

도시라는 기생(寄生)의 공간을 넘어, 농촌 공동체의 꿈

도시에서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살며 교육 문제를 고민하듯 먹는 문제를 고민했다. 무얼 먹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 몸이 달라진다는 것을 단식과 생채식 등을 통해 몸으로 배웠다. 한살림이나 민우회 생협을 이용했지만 ‘소비’하는 그 무엇을 넘어선, 땅에 발딛고 ‘생산’하며 사는 삶에 대한 꿈을 꾸는 친구들이 생겼다. 농사를 지으며 생명답게 사는 삶을 꿈꾸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도시민의 입맛을 위한 축사, 도시민으로의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한 송전탑, 도시민의 편리한 여가생활을 위한 고속화 도로, 도시민의 안정적 노후 생활을 위한 전원 주택 단지로부터 자유로운 농촌 마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도시는 철저하게 농촌에 기생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도시의 8할은 서울이었다.

귀농 귀촌을 꿈꾸는 친구들은 올해 안으로 강원도 어느 한 골짜기에 들어가 흙집을 짓고, 농토를 일구며, 중등 학교를 준비하고 있을 것 같다. 여기 북한산 아랫마을에서는 부지런히 농촌과 도시를 오갈 준비를 하며, 농촌과 도시가 함께 살아갈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


마을찻집 ‘마주이야기’ ; 마을 사랑방이다. 페인트 칠, 가구 만들기, 커튼과 테이블 보 등 패브릭 제작이 모두 마을사람들 작품으로 탄생했다. “개인은 약하지만 마을은 강하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에는 물리적 표지가 없다. 내가 가는 모든 곳에서 공동체적 관계를 맺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에서 온 것이기도 하지만, 마을공동체가 만들어가는 사건들은 공동체 내부만을 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활 공동체로, 밥상 공동체로, 교육 공동체로 함께 살아가는 길에 북한산 아랫마을에 사는 주민,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오늘도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주민들이 마을 밥상에서 밥을 함께 먹고, 마을 찻집에서 담소를 나누며, 마을 신문을 함께 보며 살고 있다.

– 한희정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