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교육/2. 지구촌·유대

[스크랩]호주 한인사

양선재 2014. 8. 22. 19:55

재외동포의창


호주 한인 사회에서는‘구교포’또는‘구포’와 ‘신교포’ 또는‘신포’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는데,‘구교포’란 1976년 이전에 호주에 입국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중포’라는 표현을 쓰는 이도 있다. 중포란 1차 대규모 사면령이 내린 1976년부터 호주의 이민정책이 사업이민, 투자이민을 받아들이는 등 크게 변화하기 시작한 1989년까지 입국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한국인의 호주 이주 역사를 보면 1970년 이전에는 소수의 유학생 및 콜롬보 계획에 의한 장학금 수혜 공무원 등이 일시 체류했을 뿐이었다. 호주에서 처음 시민권을 받은 한인은 일본에서 호주 군인을 만나 결혼한 경상북도 대구 출신의 곽묘임 씨라고 한다.


1973년 백호주의가 폐지되자 지질학자·헬리콥터 조종사·교사 등 소수의 전문 기술자가 이민했으며, 월남 패망 직전인 1974년부터 파월 기술자 500여 명이 휘틀럼 노동당 정권의 비자 간소화 정책에 따라 관광비자로 대거 입국했다. 이들 대부분은 1976년의 사면령에 의해 영주권을 취득했으며 가족의 초청도 가능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호주의 경제가 활성화돼 있지 않아서 비자를 얻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월남전이 끝날 무렵에는 경제가 활성화돼 노동력이 부족하게 됐다. 따라서 호주 정부도 비자 요건을 완화했으며 1976년의 사면령은 이러한 실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면령 이후 남미로 이민했던 사람들 중 일부와 이란·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에 갔던 중동 취업 기술자들이 계속 호주에 입국했으며, 1980년 2차 사면령에 의해 영주권을 취득하고 가족을 초청하게 됐다. 1980년 이후에는 입양·가족 초청·취업 등으로 이민이 급증했다. 남미 경유 이민자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수백 가구가 되는 것으로 추정된


다. 일부는 정식으로 입국했지만 관광비자로 입국해 그대로 눌러 앉은 경우도 많았다.


월남에 진출했던 기술자들이 대거 호주로 오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호주가 전망이 밝기 때문이었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정착하기가 어려워진 반면 덜 개발된 호주는 정착도 용이하고 돈을 벌 기회도 많다고 생각했다. 또한 호주가 월남 참전국이었다는 사실도 작용했다.



 

호주에서는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특히 한국인은 금방 배워서 기술자가 된다는 호주 고용주들의 인식이 있어서 한국인은 주로 용접공이 됐다. 호주에는 철공업이 발전했기 때문에 한국인 용접공이 한때 수백 명에 달했다고 한다.


 

한국인이 열심히 일한다는 인식은 1976년 사면을 받아 영주권을 취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용접 일이 수입은 좋았으나 80년대에 들어서 세계적인 불경기의 영향으로 이들 중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고 택시 운전 등으로 직업을 바꿨다. 일본이 자국 수요의 80%에 이르는 철광석을 호주에서 수입하다가 수입선을 남미로 바꾸면서 철광석 채광이 주춤하게 된 것도 한 원인이 됐다. 198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청소업이 한인의 주력 직종이었다.


 

가정집 외에 사무실 건물의 청소 용역도 맡았다. 이들 중 80~90%는 직접 일을 했지만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상당한 규모로 청소업을 운영하는 경영인도 있었다.


호주에 거주하는 한인은 1971년에 468명이었으나 1981년 4천514명, 1992년에는 3만9천572명으로 대폭 증가했으며 2013년 현재 15만6천865명이다.한인의 대부분은 시드니 시내 또는 주변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특히 캔터베리 시의 캠시 지역에 밀집해 거주하면서 상가를 조성하고 있다. 주요 교민단체도 시드니에 집중돼 있다.


1966년에 설립된 한인회는 물론 민주평통자문회의 대양주협의회 지회, 재향군인회 호주지회, 상공인연합회, 실업인연합회 등이 모두 시드니에 있다.


대한체육회 호주지회를 중심으로 종목별로 동호인 단체가 구성돼 있다. 월남전 참전 용사로 이뤄진 ‘월남참전협회’가 1986년 10월에 조직됐으며 국군별, 병과별 모임도 있다. 또한 파월 기술자들도 ‘파월동지회’를 구성하고 있다.


호주 한국학교 외에 각 교회 및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30여 개의 토요학교도 있다. ‘한인복지회’는 사회보장 제도가 발달한 호주에서 이 제도를 잘 활용하자는 취지로 만들었으며 한인회가 미처 하지 못하던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