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수 목사의 1분 말씀을 듣고 새소망 나눔방
박옥수 목사의 1분 말씀을 듣고 2019년 10월 23일 수요일
제목: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유튜브 검색을 하다가 맨 위에 올라오는 설교 동영상을 보았다. 박옥수 목사의 1분 말씀이다. 짧다는 생각에 들어보았다. 짧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설교 다른 것을 들어보았다. 나의 마음 속에서 말이 솟아올랐다. 박옥수 목사가 해석하는 성경의 해석과 전하려는 메시지에 대하여 나는 할 말이 있다. 내가 들은 박옥수 목사의 설교는 아래와 같다: 2019년 10월 13일 주일 메시지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 여호수아 3:7~17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널 때 강물이 쌓였다는 표현(수 3:16)에 대하여 박목사는 이야기했다. 물이 어떻게 쌓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참 믿음의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지 우리 생각에서 나와서 하는 선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리고 나서 박옥수 목사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내가 행위를 잘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되어 있는 줄 아는데, 성경은 전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건 은혜입니다. 내가 한 게 아니고 예수님이 하신 그걸 내 걸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굉장히 신앙은 쉬운데 왜 쉬우냐 하면 우리가 할 일을 예수님이 다 대신해주셔서 쉬운데, 신앙이 왜 어려우냐 하면 예수님이 해야 할 걸 우리가 다 하려고 하니까 그래서 어려운 거에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만드실 때 하나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서 그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받아들여지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와서 일을 하시면, 전에 없는 평안이 있고 행복이 있고 은혜가 넘치기 때문에 너무 복되고 주를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위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받는다. 2.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성경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3. 그 생각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든 것이다. 4. 그 생각이 우리를 부추겨서 예수님의 일을 우리가 하도록 하는 것이다. 5.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6. 그 때 참 평안과 행복, 그리고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된다.
나의 소감과 평가: 이 설교는 매우 성경적이고 어느 교회에서 해도 무방할 것 같은 메시지다. 그러나 질문과 이성의 시험장을 통해서 보면 다른 점이 드러날 수도 있다. 나는 그 일을 하고자 한다. 이것은 문제제기요 대안 제시다. 1. 박옥수 목사의 메시지는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 그것은 행위구원이 아니라 은혜구원을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존재임을 계속적으로 말한다고 박목사는 설교한다. 그래서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생각을 가지고 판단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물이 쌓였다고 하면 쌓인 줄로 믿어야 하고, 죄를 용서했다고 하면 죄를 용서한 줄로 믿어야 한다. 거룩해졌다고 성경이 말하면 거룩해진 줄 믿어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면 그 후로부터 마음 속에 참 평안과 행복이 찾아오고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된다. 과연 그럴까?
2. 행위냐 은혜냐의 논쟁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주로 나오는 주제다. 그리고 그것은 바울의 평생 과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필생의 사명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단언했다(행 20:24). 하지만 이 논쟁이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유대인들과의 대립 가운데 이루어진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유대인들처럼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선민으로 살다 보면 율법주의라는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오늘과 미래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오직 은혜로’ 신앙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복음의 전부일까?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우리가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일까? 신앙생활에 힘든 길을 걸어가면 안 되는 걸까? 그러면 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셨는가? 왜 바울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신 선한 일(엡 2:10)이 있다고 강조했는가?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 참 평안과 행복을 누리는 데 있는가? 우리 인간이 그렇게 수동적이고 낮은 차원의 목적에 만족하는 ‘어린 아이’ 같은 존재인가? 박옥수 목사의 복음은 ‘어린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에게는 물론 젖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원히 아이로 머물 수는 없다!
4. 아이의 또 하나의 특징은 추상적인 사고와 논리적인 사고에 약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만화나 그림동화 같은 것을 좋아한다. 비유나 은유, 풍유나 역설 같은 것은 아이들을 혼동시킨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스스로 아이가 되고자 하는 시도가 아닌가 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문자적으로 읽고, 그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 배경과 역사, 그리고 문맥을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 대한 이해가 역사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또한 오늘의 시대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시도다. 신천지에서도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가르친다. 먼저 생각을 마비시키고 단순한 사실에 동의하도록 한 다음, 어린아이와 같이 된 사람들을 왜곡된 교리로 마음껏 요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글은 다음을 보라: http://cafe.daum.net/Wellspring/8SB1/300 - 신천지(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 성전)가 가르치는 교훈에 대하여)
5.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각 사람은 자기 수준에 맞게 성경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각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유익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성경읽기는 그 자체로 귀하며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성경읽기도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자신이 성경을 주체적으로 읽으려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 이는 독단에 빠지라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 무조건적으로 그의 말과 해석이 옳겠거니 하고 추종하는 사상적 노예가 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성경읽기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다른 사람의 성경읽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정직하게 서로의 생각을 비교한다면 자기의 성경읽기는 한층 더 풍성해지고 발전할 것이다.
6. 이런 점에서 다른 사람의 성경읽기 방식을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매도하는 행위는 자신의 사고를 우물 속의 개구리 신세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물론 아이에게 거친 음식은 해로울 것이다. 하지만 집안에 아이가 있다고 해서 모든 가족이 우유를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닐까? 그리고 아이도 점차 이유식을 먹으면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자라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교계에 신천지나 구원파 같은 가르침이 득세하는 것은 어쩌면 어린아이들이 많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창조과학회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순수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도 문서설과 같은 역사비평적인 성경읽기에 좀 더 마음을 열면 그들의 수고가 더욱 빛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은 아예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아버린 사람들처럼 보여 안타깝다.
7.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보자. 구원을 받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러면 구원이 무엇인가? 우리가 금과옥조로 받들어 배워온 기독교의 대속신학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왜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는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8. 더불어 다음의 질문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자. 하나님은 본래 세상과 우리 인간을 왜 만드셨는가? 이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저 죄를 용서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 되는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정말 하나님은 동의하실까?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바 하나님의 뜻을 다른 사람도 동의할까? 바울이 말한 바, 하나님의 경륜은 무엇일까? 기존 교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회가 이 세상에 진정으로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가? 우리가 예수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죽어 천당 가는 것이 과연 신앙생활의 전부인가? 이 세상에 인생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과연 박옥수 목사는 이런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까? 우리들은 이에 대한 마땅한 대답이 있는가? 나는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함께 진리를 알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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