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교육/ 1. 한국의 얼

[퍼온글][아리랑모둠 노래나눔] 8-9월 중국 / 러시아 <씨를 활활 뿌려라>, <고려아리랑>

양선재 2018. 8. 24. 09:44


출처 : 정은 | 조회 23 |추천 0 |2018.08.23. 08:04 http://cafe.daum.net/welife111/LFeD/1880 



[아리랑모둠 노래나눔] 8-9월 중국 / 러시아 <씨를 활활 뿌려라>, <고려아리랑>

아리랑 연구 모둠은 매월 순례지역의 아리랑이나 그 땅의 얼이 스민 민요를 찾아 부르고 나눕니다. 순례 떠나기 전 미리 나누어 함께 공부하는 고운이들이 순례현장에서 노래를 같이 듣고 그 땅의 얼을 보다 폭넓게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눕니다.  


>> 3월 제주 <서우젯소리>

>> 4월 경상 <나무꾼 신세타령>, <옹헤야>

>> 5월 전라 <어울림 아리랑>, <상여소리>

>> 6월 충청 <광복군 아리랑>

>> 7월 강원 <아라리 타령>






아리랑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고,

특히 흩어진 겨레에게는 ‘뿌리'를 기억하게 하는 노래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지금까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태국에 사는 노수복 할머니는

모국어를 말하거나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고향집 주소, 가족의 이름 그리고 아리랑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자신이 조선사람임을 증명할 수 없을 때, 아리랑을 불러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노수복 할머니에게 ‘아리랑'은

몸과 마음에 심어진 우리 ‘얼'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중앙아시아, 광주 등지에 사는 고려인들의 삶에도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던 고운 울림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고려인들은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아시아로 강제로 이주 당하고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척박한 땅을 옥토로 일구고 노래, 몸짓 등을 통해 우리 ‘얼'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의 멋과 흥을 즐기고 지켜온 흔적은 ‘고려극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32년 원동(연해주)에서 창립된 고려극장은 강제이주 이후 중앙아시아를 다니며 힘든 상황에서도 순회공연을 하며 그 맥을 이어갔습니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 모스크바...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이들에게 ‘고려극장’이 찾아오는 날은 유일한 잔칫날이었다고 합니다.



참고자료: 영화 <고려아리랑: 천산의 디바>


1941년 고려극장 단원들


고려극장에는 극동에서 시작된 이주의 역사와 중앙아시아 곳곳을 유랑, 순회한 경험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고려극장을 창립한 1세대 연성용, 이길수, 이함덕에 이어 2세대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연극대학을 나온 김블라지미르 인민배우, 문알렉산드르 배우 등이 있었어요. 2세대들은 극장 건물도 없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떠돌아다녀야 했어요. 당시 고려인들은 경제적으로 곤궁한 삶이었습니다. 카자흐스탄 개간사업에 투입될 때는 수많은 사회주의 노력영웅들을 배출하기도 했지요. 그런 고난 속에서도 80여 년을 지켜온 국립 고려극장은 여러 다른 민족에게 자랑거리입니다.” - 고려인 3세대 김엘레나 인터뷰 중


참고자료: <고려인 디아스포라 80년…한국 찾은 고려극장>


고려극장을 창립한 1세대인 연성용은 연출가이자 시인, 소설가, 작곡가로 <씨를 활활 뿌려라>라는 노래를 지었습니다. 이 노래는 지금도 고려인들의 애창곡이기도하고 노동요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참고자료: 고려극장


1946년 구 소련정부가 고려인의 성공적 정착을 선전하기 위해 제작한 영상 '선봉'(아래 영상)에 배우 이함덕의 목소리로 잠시 노래가 나옵니다.



‘씨를 활활 뿌려라'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이 노래에는 척박한 땅을 힘차게 일구는 고려인들의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저희도 그 마음 담아 노래를 불러봤습니다. 들어볼 수 있는 음원은 없지만, 단소, 해금, 가야금, 장구 함께 어우러져 소리 모았습니다.



노래: 경열, 계진, 윤정, 지명, 은혜, 정은

해금, 단소, 장구: 미라

가야금: 지명


1. 이 넓은 들판에 씨 뿌려 풍작의 가을을 몰아오면

누렇게 누렇게 벼이삭 우거 우거져 파도치리

2. 꼴호스 농장아 왜 끓어 봄을 마중해 소리치지

또락또르 또르르 굴러라 파종 시절이 늦지 않게

3. 에헤라 즐겁다 이 봄이 따뜻한 태양이 비치는 봄

일망 무제의 막야 옥토 부요한 내 나라 이 아니냐

4. 이 넓은 옥야에 풍년 와 곡식 창고가 가득 차면

새 생의 새 봄은 더 너래쳐 행복의 고개를 또 넘긴다


에헤 뿌려라 씨를 활활 뿌려라

땅의 젖을 짜먹고 와짝 와짝 자라게


-꼴호스 농장: 공동농장

-일망 무제: 아득하게 멀고 넓어서 끝이 없음



노동요답게 힘차고 노랫말도 희망적입니다.

‘땅의 젖을 짜먹고 와짝와짝' 자란다는 표현도 인상적이지요.



고려인들이 부른 아리랑은 없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봤는데요,

특별히 고려인들만 부른 아리랑은 없었지만 녹음된 기록상 가장 오래된 아리랑이 1916년 고려인이 부른 아리랑이었습니다. 1916년 러시아군에 징집되어 독일군 포로가 된 고려인 2세가 부른 아리랑인데요, 경기 자진아리랑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1916년 고려인2세 전쟁포로 김그리고리가 부른 아리랑


고려인들이 부른 아리랑이 궁금하던 차에 고려인 2세인 한야콥이 지은 <고려아리랑>을 알게 됐습니다. 한야콥은 고려극장 아리랑가무단의 단장이자 지휘자로 고려인의 노래를 100곡 이상 작곡·편곡하며 민족노래 보존에 앞장서왔습니다.


한야콥님은 한민족 이민사상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고려인들을 위한 아리랑이 없다는 것이 부끄럽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후 이후 김병학 시인에게 작사를 부탁해 고려인의 연해주 생활과 강제이주 이래 중앙아시아에서의 80년의 삶과 역사를 담은 '고려아리랑'을 2015년 발표했습니다..


"우리 부모님과 조상들이 겪은 고달픈 삶의 역사를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음악으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 한야콥


참고자료:

<고려인 아리랑 복원한 카자흐 음악가 한야콥 씨>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척박한 삶 달래준건 노래">


강제이주로 겪은 설움, 그리고 동시에 한 겨레라는 정신으로 살아온 고려인의 삶을 노래를 통해 느낄 수 있었어요. 박자는 12/8로 전형적인 동북아시아의 3분박이지만, 음악의 어법은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이번엔 피아노도 같이 연주해봤습니다.


원곡을 먼저 들어보세요.


함께 녹음한 노래 나눕니다.



노래: 경열, 계진, 윤정, 지명, 은혜, 정은

해금: 미라

가야금: 지명

건반: 정은


1. 원동 땅 불술기에 실려서
카작스탄 중아시아 러시아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도
우리는 한 가족 고려사람

2. 진펄도 갈밭도 소금 밭도
땀 흘려 일구니 푸른 옥토
모진 고난 이기고 일어서니
우리는 한 민족 고려 사람

3. 아버님 남기신 선조의 얼
어머님 물려주신 조상의 말
가꾸고 다듬고 지키리라
우리는 한 겨레 고려사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고려 아리랑

-불술기: '기차'의 함북 방언
-중아시아: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식 표현
-진펄: 땅이 질어 질퍽한 벌
-갈밭: 갈대밭


함께 노래 부르며 고려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모진 아픔 겪었던, 그리고 끝까지 삶을 일구어낸 고려인들의 발자취를 노래로 각익하고 기억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노래하고 녹음하는 것에 집중해서 사진이나 영상 자료가 없습니다.

8월23일~9월3일 중국/러시아로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 떠나는데요, 곳곳에서 <고려아리랑>을 나누려 합니다.


이후에 사진과 영상자료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