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십자가를 향하여
나는 예수님의 큰 비중을 두었었는데 저자는 부활보다 '죽음'이 핵심임을 주장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죄가 그만큼 무섭고 악함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제2부 십자가의 핵심
십자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위치를 대신하신 것이다.
십자가의 본질적인 배경은 죄(sin)[하나님에 대한 반항, 교만], 책임, 죄책, 하나님의 거룩과 진노이다.
우리를 위해 자기를 내어주신 이는 하나님 자신(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이셨다.
제3부 십자가의 성취
□ 죄인의 구원은 화목, 구속, 칭의, 화해라는 네 가지 이미지에 의해 예증된다.
1. 화목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성전 의식이다.
그리스도의 피를 마심은 그 분이 생명을 버리심으로써 우리가 얻게 된 유익을 자신의 것으로 삼음이지 그 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2. 구속은 죄인의 궁지에 값을 지불하는 속전(ransom), 재산권(그리스도의 종). 상거래.
우리 몸은 창조, 구속, 내주하심에 의해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고로 순종과 자제에 의해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그 분에 대한 봉사는 참된 자유다.
3. 칭의는 법정에서의 절차. 정죄의 반대.
칭의의 원천은 그 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롬3:24)
칭의의 근거는 그 분의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음(롬5:9)[처벌에서 벗어남]
칭의의 방법은 이신칭의(justified by faith)[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 연합됨]
칭의의 효과는 예수님의 메시아 공동체의 일원이 됨
“하나님은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신다. 하지만 이것은 믿음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가 믿는 그 신앙의 대상의 고귀한 가치 때문이다.”
4. 화해는 관계 회복. 가정 혹은 가족 속에서의 경험 이미지
하나님과의 화해는 인격적인 관계로서 양자로 받아들여짐이다.
하나님께 나아감은 칭의에 기인하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은 화해에 기인한다.
새로운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과 화해(엡2:11-22)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형제, 자매가 되며 그리스도의 몸의 동일한 지체로서 메시아의 소망을 함께 나누는 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만물(우주적 권세)과의 화해(골1:15-20)를 함으로서 우리는 화해의 사신이 된다(고후5:18-21).
□ 하나님의 계시와 악의 정복
어떤 점에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증거가 되는가? 하나님의 선하심이 십자가속에서 온 세상 앞에 드러났다(칼빈). 수난은 영화(glorification)가 실제로 이뤄지는 영역이다(요한).
그리스도는 심자가를 보좌로 하고 그 위에 앉아서 세상을 다스린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와 그의 휘하에 있는 모든 ‘정사와 권세’에 대해 승리를 거두고 그것들을 무장해제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쥐고 있는 자를 멸하신 것은 그분의 죽음에(부활이 아님) 의해서였다(히2:14).
복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모두 포함한다.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그리스도의 승리 안으로 들어가서 그 승리의 유익을 즐기는 것이다. 네 가지 마귀의 일은 율법, 육신(자아중심성), 세상(하나님이 없는 인간사회), 그리고 죽음이다.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시대’는 율법이 아니라 은혜가, 육신이 아니라 성령이, 세상의 풍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그리고 죽음이 아니라 풍성한 생명이 그 특징을 이룬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신 그 승리다.
이제 우리는 마귀를 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
제4부 십자가 아래 사는 삶
십자가는 하나님, 우리 자신, 기독 공동체의 안팎에 있는 사람들, 폭력 및 고난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변혁을 일으킨다.
□ 경축하는 공동체
-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통한 축제의 삶에서 공적 예배의 특징은 담대함, 사랑, 기쁨이다. 교회는 제사장적 공동체로서 그 안에서 모든 성도는 똑같이 ‘제사장들’이다(만인제사장설).
- 십자가와 기독 공동체의 관계는 한마디로 ‘경축하는 공동체’이다.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곧 십자가의 공동체이다. 십자가에 의해 생겨났고, 계속해서 십자가에 의해 그리고 십자가 아래서 살아간다. 공동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의해 이루신 유익을 나눌 뿐이다.
십자가의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우리의 찬양과 감사의 거룩한 제사(예배)를 계속해서 드리는 경축하는 공동체요 성찬식의 공동체이다.
□ 자기 이해와 자기 희생
-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따라서 죄와 죄책과 수치의 옛 삶은 끝났고 거룩함과 용서와 자유라는 전적으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이런 우리의 새로운 자아는 비록 구속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타락한 상태이므로 이중적 태도가 필요하다. 즉 자기 부인과 자기 긍정이다.
자기 부인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십자가는 자아에 대한 죽음의 상징이다. 죄, 자아, 육체적 무사안일의 죽음이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육체의 나쁜 행실을 죽이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눈다.
자기 긍정은 우리의 창조된 자아이다. 그리스도와 양립할 수 있는 우리 안의 모든 것이다. 이기적 자기 사랑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빚어진 우리의 모습에 대한 긍정이다.
- 고난받는 섬김은 번영(개인 성공 보장)의 복음을 배제한다. 갈보리의ㅣ 사랑으로 자기희생적이고 건설적인 돌봄과 보호이다. 지도력은 겸손과 봉사, 온유와 관용에서 나온다. 지체간에는 서로 사랑하는 이타성이 중요하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기적 야망)과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자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한다. 사회정의는 발전을 위한 구조변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 원수를 사랑하는 것
- 우리는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서둘러 용서함으로써 용서를 값싸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17:3)
기독교적 화목은 사랑과 정의-그럼으로써 십자가의 고통을- 드러낸다.
교회에서는 서로의 짐을 져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한다(갈6:1-2).
- 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악을 미워하고 되갚지 않고 이기고 처벌해야 한다. 예수님의 새로운 공동체에서 저주는 축복으로, 원한은 기도로, 복수는 섬김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기도는 원한에 찬 마음을 깨긋하게 한다.
-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다소 비판적인 존경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 국가의 권위의 기원은 하나님이다. 국가에 권위를 주는 목적은 권선징악이다. 그 권위가 시행되는 수단은 반드시 통제되어야 한다. 국가의 권위에 대한 올바른 승인을 해야 한다. 국가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되는 바로 그 시점까지 국가에 복종해야 한다. 그 경우 정의, 자제, 분별과 통제, 균형, 확신 등의 원리들을 양심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용서는 변화의 역동적 개념이다. 용서는 가능한 한 가장 창조적인 방법으로 잘못에 비추어 미래를 고쳐가고자 기꺼이 애쓰는 접근 신호이다.”(Hoddon Willmer, 용서의 정치)
□ 고난과 영광 - 십자가와 우리 고난의 간계-
성경의 목적은 철학적이기 보다 실제적이다. 따라서 성경의 관심사는 죄, 고통의 기원을 설명하기보다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을 통해 인내를 고무하고, 성숙한 거룩함으로 성장하게 하며, 고난의 섬김을 상징하고, 궁극적인 영광의 소망이요 합리적인 신앙의 기초다.
결론 십자가의 편만한 영향력
복음 전파는 십자가 선포이다. 십자가는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근거요 성화되는 수단이요 증거할 주제이며 자랑할 대상이다.
“십자가를 전할 수 있는 자는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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