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부작'의 한국식 교육 풍토
‘술이부작’은
“子日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이란
말에서 나온 공자의 학문적 태도와 사고방식을 지칭하는 말이다.
공자는
요·순,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등 상고시대의 사상과 문화를 가감 없이 그대로 전해야 했다.
현실주의자
공자의 눈에 미래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미래를 말할 필요가 없었다.
공자의
‘술이부작’은
동양철학의 학문적 태도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유교 영향권에 있던 동양인의 인생관,
세계관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공자의 학문적 태도를
따르는 학풍이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에 그대로 남아있다.
스승의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질문하면 그 제자는 교권과 사도에 도전하는 열등한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술이부작’의 교육은 상상력과 창의력,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방법에 관하여 관심이 없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
새로운 이론을 창출하지 못하는 한국 교육풍토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 위에서 고기를 잡는 것(緣木求魚)”을 기대하는 것과도 같다. 인류의 0.2%인 이스라엘 민족은 1901~2015년 동안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차지했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357명), 영국(118명), 독일(102명) 순이고 이스라엘은 19위로서 12명이다. 그러나 상위 국가의 수상자 대부분이 유대민족이다.
동양에는 일본(24명), 인도(13면), 중국(12명)의 순이며 한국은 단지 평화상 1명(고 김대중 대통령)이다. 다 같이 공자의 영향을 받았을 터인데 말이다.
한국인과 유대인을 비교하면
비슷한 점이 많다. 머리의 명석함, 부지런함, 교육열, 여성 주도적인 역할 등이다. 그런데 교육철학이 다르다고 한다. 한국 교육은 상급학교나 직장에 들어가는 시험기술의 터득이 더
중요하지만, 유대 교육은 인성과 지식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통해 새로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 등을 키우는 전인교육이다. 이것이 많은 유대인들의 노벨상 수상을 가능하게 한 계기였을 것이라고
본다.
‘술이부작’의 교육 풍토는 『장자』(莊子)의 추수편(秋水篇)에 언급된 ‘정와하충(井蛙夏蟲)‘의 사고방식을 고착화한다.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의심하고, 여름 벌레는 얼음을 의심한다(井蛙疑海
夏蟲疑氷).”는 말처럼 보는 것이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 이상하다 싶은 자연의 현상이나 변화에 대해서 듣기라도 하면, 손을 내저으며 믿지 않고 말하기를 “세상에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는가.”하고 비난한다.
일제 강점기의 어용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 세키노 타다시(關野貞), 쓰다 소키치(律田左右吉) 등이 우리나라의 상고사를 말살, 조작, 왜곡하여 소위 반도사관 혹은 식민사학의 역사로 둔갑시켰다. 이들의 하수인인 이병도와 신석호의 아류들이 ‘술이부작’의 방식으로 우리 민족의 유구한 문화와 전통을 역사의 뒤안길로
날려버렸다.
‘술이부작’의 교육 풍토는 세력화되어 당쟁과 학문권력의 형태로
시시비비를 겨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땅에서는 다툼의
소리가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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