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코하람의 교훈
최근의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아프리카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보코하람은 지리 교사 등 교사들을 집중적으로 살해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부정하는 진화론과
지동설을 가르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는 지난달
11일 나이지리아 교원노조
자료를 인용해서 보코하람이 2009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교사
611명을 살해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보코하람'은 나이지리아 북부지역 방언인 하우사어로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고 있는 이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 인류가 진화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함축하는 다윈주의 등 생물학, 물리학, 천문학 같은 현대과학이론을 모조리 부정하며 혐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보코하람은 지구가 둥근 것이 아니라 평평하고, 강우 현상도 증발한 수증기가 모였다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신의 신성한 뜻에 따른 것으로 믿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신과의 연관을 통해서만 이해하고자 하며 현재 입증된
객관적 사실보다는 과거 신화의 시대, 혹은 유목시대나 농경사회에서 믿었던 신념에 집착하고자 한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교사들의 학살로 이어질 뿐 아니라 합리적 배움의 기회를 상실한
95만 명의 학생들에게 미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신앙의 자유에
따라 어느 특정한 종교를 선택할, 혹은 어떤 종교도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이 자유를 제대로 누리려면 다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할 의무와 책임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자세를 ‘열린 마음’의 자세라고 한다. 버트란트 러셀은 그것을 과학기술시대에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서 ‘과학적 태도’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자기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하여 권위나 폭력이 아니라 논변이란 형식을
취하며 그 논변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경험적 증거를 제시한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주관적 판단이 배제되고 완전한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논변이라는 형식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논리나 이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정한 태도의 표명이며, 경험적 증거에 호소한다는 것도 애매한 주장일 뿐 아니라 그러한 것만이 바람직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작 중요한 것은 역시 열린 마음의 자세이며, 러셀은 그것을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믿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보코하람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을
때,
가령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신앙을 가질 때 그 내용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의 신념이나 신앙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으면 나는 그것을 절대적으로 선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경우 만약 다른
사람의 신념이나 신앙이 나의 것과 다르다면 나는 독선적이 되어 그것이 단순히 다를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악한 것이라고 간주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절대
악을 묵인하거나 허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절박한 사명감에 불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
사실이 입증하듯이 악을 제거하기는커녕 이른바 ‘절대
악’과 공존하는 경우보다 더
많은 악을 새롭게 창출하고야 만다.
그렇게 되면 마침내 내가
원래 견지하던 신념이나 신앙의 내용을 훼손하는 결과를 빚어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무엇을
믿는지’보다 그것을
‘어떻게
믿는지’가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이유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