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공동체엔 사람을 끄는게 있다
5.서울 도봉구 도봉동 은혜공동체
» 공동식당에서 식사하는 아이들과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 박민수 목사
늘 잔치같은 집이 있을까. 서울 안의 시골 도봉산 아래 안골마을에 이런 집이 있다. 49명의 대식구가 한집에서 살아가는 은혜공동체다.
은혜공동체 설립자 박민수(51) 목사는 2000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의 강의실을 빌려 예배를 드리기 시작할 때부터 ‘교회’대신 ‘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경희대인근 교회에서 2007년부터 방과후학교 형태의 공동육아를 하고, 돌싱 두가족과 싱글남 싱글녀등 16명이 꾸린 연합가정을 꾸리게 했다. 이미 공동육아와 연합가정을 통해 ‘함께 사는’ 단맛을 안 교인들은 모두 함께 살 날을 손꼽아왔다. 그리고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든 교인들이 힘을 모은 공동주택에 지난 8월 입주했다.
드디어 교회와 삶터가 분리되지않고 함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찬들조차 ‘일주일 내내 교회에서처럼 함께 경건하게 살려면 숨 막히지않을까’라고 우려할 법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층마다 여러개 방들과 연결된 거실과 부엌이 있는 5개층 모두 놀이터이자 수다방이다. 지하 공동식당 옆 다락방에선 아이들이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깔깔댄다. 2층 식탁에선 어른 세명이서 철학책을 읽고 독서모임중이고, 3층 거실에선 이곳 초중고 홈스쿨 교사와 아이들이 지리산 종주 계획을 짜고 있다. 직장맘들도 아이들과 살림은 당번에게 맡기고 이웃들과 대화하거나, 밴드실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댄스실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공동체에 들어오기 전까지 퇴근해서도 집안일하고 아이들 돌보느라 파김치가 됐던 그들로선 유토피아도 이런 유토피아가 없다. 공동식당에서 하는 저녁식사도 살림 걱정 없이 즐기니, 늘 파티 분위기다.
한집에서 울타리없이 지낸다는 공동체살이에 부담을 느껴 입주를 미룬 교인들도 퇴근후면 이곳에 와서 집에 갈줄 모른다. 언니 오빠 친구, 동생들과 노는데 여념이 없는 아이에게 ‘이제 밤이 늦었으니 집에 돌아가자’고 하면 ‘더 놀겠다’면서 울음을 터트리곤 한다. 미입주 교인들은 인근에 2차 코하우징 건축을 계획하고 있다.
» 지난 한가위 황금연휴때 온공동체 식구들이 스위스로 여행을 떠났다. 하루종일 알프스를 트레킹하던 공동체식구들
지난 추석연휴 때 스위스 여행 때 교인 80명 가운데 직장일 때문에 불가피하게 못간 단 한명을 제외하고 79명이 동행한데서도 ‘조직의 단맛’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전교인이 유럽으로 여행을 가다니. 상류층들만 산다는 오해를 살만하다. 그렇지않다. 함께 하다보면 저비용으로 이런 호사를 누리는게 가능하다. 황금연휴 4일간 스위스 여행도 1년전에 예약을 해서 1인당 200만원 내 해결했다. 이 집 건축비도 총 45억을 들었으니, 1인당으로 따지면 채 1억원이 안된다. 이런 비용으로 서울에서 호텔 못지않은 시설을 이용한다는건 공동체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식비를 비롯한 1인당 한달 생활비도 10만원이 안드니 공동생활이 주는 혜택은 믿기지않을 정도다.
이곳엔 돌싱도 두가정이 있다. 이들은 부모 이혼으로 상처를 입을 수 었었던 아이들이 많은 이모 삼촌들의 보살핌으로 그늘 없이 자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비혼동거부부도 밖에선 이상한 눈으로 볼텐데도 이곳에선 잘 이해해줘 편하게 지낸다고 했다. 직장을 잃은 공동체원을 위해서는 공동기금을 빌려줘 떡볶기집과 인테리어공방을 내도록 도운 것도 공동체답다.
은혜공동체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소통의 깊이’다. 교회나 동창회 등에서 피상적인 대화로 감정의 찌꺼기가 쌓이고 더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던 사람들도 이곳에선 속앳말을 터놓는 대화와 공감으로 얼굴빛이 환해진다. 그 비결은 기존 교회와는 다른 이 공동체만의 혁명적 시스템에 있다.
» 은혜공동체 건물 옥상에 선 박민수 목사
예배당과 같은 구실을 하는 이곳 지하는 세미나장 같다. 의자들도 원으로 배치돼 있다. 일요일에도 찬송가와 주기도문, 설교 등으로 이어지는 예배는 이곳에선 없다. 대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10여명씩 소그룹 토론을 하고, 점심식사 후에도 인문학 강사를 모셔 강의를 듣거나 독서모임을 하거나 깊이있는 소그룹 토론을 이어간다. 한달에 한번은 전국의 산하로 야유회를 떠난다.
은혜공동체도 10년 전까지는 기성교회처럼 예배했다. 그러다 박목사가 신학대학원에서 배운 토론식모임을 교회에도 도입했다. 토론엔 어떤 금기도 없었다. 그러자 신화적인 도그마는 붕괴됐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친 정수만이 남았다. 열린 토론과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예수처럼 인간을 존중하고, 이웃과 나누고, 약자를 보듬는 사랑에 집중하게 됐다. 이들이 자기끼리의 재미에 빠지지않고, 고문피해자돕기모임인 진실의힘과 끈을 맺어 조작간첩희생자들과 고문피해자들을 전국으로 찾아 위로하며 돕게 된 것도 이런 토론식 공부 후의 변화였다. 유서대필조작사건 피해자 강기훈씨와는 오는 주말 이곳 음악회에서 공동연주를 할만큼 ‘절친’이 됐다. 고문 피해자들조차 공동체사람들이 빚어내는 ‘케미’속에서 안식을 찾는다.
또 하나 주목할만한 특징은 박목사와 일대일상담이다. 박 목사는 “예수께서 가르친 인간존중과 사랑이야말로 행복의 비결”이라며 “그러나 개인적인 성격과 심리 문제가 해결되어갈 때 그런 존중과 사랑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교인 숫자를 무한정 늘리는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보살펴 예수에게 나아갈 수 없게하는 걸림돌을 넘어서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목회라고 생각했다. 그가 ‘잘 나가는’ 교회 부목사직을 5년만에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목회에 대한 본질적인 의견차 때문이었다. 지난 한해동안 이 공동주택을 지으며 박 목사와 신자를 지켜본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 기노채 이사장은 체 게바라 책을 늘 머리 맡에 꼿아두는 박 목사를 두고 “진정한 혁명가는 체게바라가 아니라 박 목사 같다”고 평했다.
» 직장에서 퇴근한뒤 은혜공동체 건물 1층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공동체원들
박 목사는 상담전문가인 아내의 도움으로 심리상담을 공부하며 일대일 상담에 집중했다. 한명 한명의 상처까지 껴안느라 자신의 건강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심리상담은 놀라운 치유력을 보여주었다. 또 일부 공동체원들간의 갈등까지도 해소돼 소통되는 변화를 가져왔다. 한 중학생은 “학교 친구들과는 농담 수준에서 대화가 끝나기 마련이고, 밖에선 어른들이 꼬맹이라고 무시하고 진지한 대화에 끼워주지도 않는데 이곳에선 중학생부터 어른들과 함께 소모임에 참여해 대화도 하고, 삼촌 이모들이 꼰대처럼 굴지않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줘 깊은 얘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마음에 맺힌 것도 다 풀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심리적 돌봄은 박목사에게서 그치지않는다. 은혜공동체에서는 누구에게나 ‘가톨릭의 대부’와 같은 목자가 있어 힘들 때면 상담을 한다. 아이들도 자기 부모 외에 멘토가 정해져 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또한 개인간에 마음 속에 불편한 것이 있을 때 마음에 담아둬 개인과 공동체의 병을 키우지말고, 절대 하루가 넘기 전에 서로 만나 풀도록 하는 것도 은혜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요소다.
그토록 속앳말까지 터놓고 서로 친해지다보니, 시간적으로는 좀 더 많이, 공간적으로는 좀더 가까이 있고 싶어하는 갈구들이 가득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엿을 붙여놓은것만 같다. 하하 호호 웃음이 그치지않는 은혜공동체가 바로 성경 시편이 말한 그곳이 아닌가.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