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이야기
일반 시민으로서 탈북민을 만나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철학상담치료학회원들과 함께 탈북민 대상 시민인문강좌를 개최했고, 상담활동을 펼쳤다. 따지고 보면 사실 나도 탈북자다. 한 살이 채 못 되어 엄마 등에 업혀 북한군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오밤중에 강을 건너 월남했다. 그러니까 6·25 동란 발발 이전 탈북자다. 지금의 탈북 경로는 훨씬 더 멀고 복잡하며, 여러 나라 국경선을 넘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년 동안 몽골이나 동남아 국가를 거쳐서야 비로소 대한민국 입국에 성공한다. 물론 도중에 붙잡혀 다시 북한으로 압송되거나, 병이 들거나 다쳐 사망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북한의 고위층 외교관 출신 탈북자는 전혀 주저함 없이 북한을 "노예제 국가"라고 정의내리며 이렇게 호소한다. "노예 상태인 북한 주민들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미국의 남북전쟁처럼 물리적인 방법을 쓸 수는 없지만, 한반도의 노예해방의 싸움은 시작되어야 한다." 또 그는 덧붙인다. "그러자면 통일의 주체를 북한 주민으로 보아야 한다. 북한 주민은 자체로 일어날 힘과 의식이 있고, 이미 엄청난 정보가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다. 북한 내부의 변화는 이미 진행형이다. 그 변화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속도로 올 것인지가 문제일 뿐이다."
"북한 주민이 주체가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핵심은 장마당이 "주민의 경제적 주도권을 키워줄 것"이라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수백 개의 장마당, 그리고 '한국 영화나 드라마 보기' 등은 사실 북한에서는 엄청난 변화이며, 그 효과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남한에 기대를 건다. "그렇다고 한국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한국이 주동이 되어 그런 변화를 앞당기기 위해선 대북 제재를 지속해야 한다." 대북 제재가 단순한 경제 수치 이상의 효과를 가져오는 이유가 있다. 대북 제재가 북한의 시장을 성장시켜 자본주의 요소를 유입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북한의 석탄 수출이 막히면 석탄은 내수로 돌아간다. 수출 가격은 국제시장 기준이지만 내수 가격은 북한 당국이 정하며, "당국이 정한 가격은 국제시장 기준의 수백분의 1, 아니 수천분의 1이다." 사정이 이러니 석탄은 장마당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장마당에서는 국정 가격보다는 수백 배 이상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장마당은 북한 당국에게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으며, 모든 물자가 이렇게 장마당에 모여들게 되면 시장경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 만약 이를 정권이 통제하려 든다면 정권과 시장의 충돌은 불가피하며, 그 결과는 시장의 승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탈북 외교관은 대북 제재의 또 다른 효과도 지적한다. 북한의 최대 경제 주체는 군대라는 점, 그리고 군인들은 건설 현장과 갖가지 생산 현장에 동원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북 제재가 지속되면 전시를 대비해 비축해 둔 군량미 창고를 열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곧 전쟁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정은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 탈북 외교관은 이렇게 전한다. 그것은 결코 미국의 군사적 공격은 아닐 것으로 본다. 오히려 북한 주민과 청년들에게 사상과 문화가 침투하는 것이 더 무섭고, 심각한 체제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그 한 예증으로서 2017년 11월《노동신문》게재 기사를 언급한다. 즉, "새것에 민감한 청년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잘하지 못하면 북한 사회에 큰 우환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북한의 '사상교양사업'의 효과와 그 성공 여부는 북한 지도부는 물론, 우리 남한에게도 관심사가 된다. 북에서는 그들의 사상교육이 그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효과를 유지하도록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우리 남한에서는 북한 지도부의 사상교육이 더 이상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하게 될 경우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