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8장 21-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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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8장 21-30절
- 29절-30절 :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 오늘 본문의 내용은 어제 본문에 이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전하는 예수님의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예수님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실 것을 말씀하시며, 예수님의 소속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이심을,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늘 함께 하고 계심을,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말씀하시며 자신의 신성에 대하여 강조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시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주를 찾다가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며, 하늘 나라에 올 수 없음을 거듭 경고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예수님이 자결을 하려나보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예수님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시고, 고통과 핍박을 견디지 못하시고 자결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시기 때문이다. 한편,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을 사로잡는 구절이 하나 있다면,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셔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들이 믿더라'는 말씀이다.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자의적으로 사역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따라 사역하고 계심을 말씀하시고 주장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율법 위반자, 마치 이단처럼 몰고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든 언어와 행동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땅에 오셔서, 인기와 권위 등의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 짓눌린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자기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하나님의 증언을 힘입은 정당성이 완벽한 사역이었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메시아적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증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의 결과였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영성이란 눈 앞의 메시아도 알아보지 못하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것이었다. 그들의 기도와 모든 종교 행위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심이 아니라 위선이 가득했다. 그들은 천성을 향한 순례길을 걸어가는 신앙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말하지만 현세의 만족과 권력을 추구하고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와 영원히 침해받지 않는 종교권력에 더욱 큰 관심이 있는 종교 행위자들이었다. 그들은 종교 행위를 통해 자신들이 가진 종교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했다. 그들이 가진 종교 권력은 하나님께로 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자기들 스스로 획득한 권력이기에 아무 정당성이 없다. 그런데, 예수님을 정죄하고 비난할 아무 자격도 당위성도 없는 그들이 예수님의 메시아적 지위에 대한 정당성을 문제삼으며 예수님을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다. 예수님의 메시아적 지위는 하나님의 증언과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그 정당성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그들이 예수님의 지위를 부인하는 것은 그를 증언하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는데 예수님의 지위를 부인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예수님의 엄청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 말을 한 마디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영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영성이 아닌 종교 지성에 함몰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지성이 아니라 영성으로 알 수 있는 분이다. 그 분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 우리 역시 성령의 충만함,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다. 말씀을 지성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말씀은 많이 안다 하더라도 말씀에 대한 깊은 깨우침, 내 삶의 원리를 바꾸어놓는 그러한 일들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박사 학위를 가진 철학자이기 때문에 성경 말씀이, 그 말씀이 증거하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우리가 영의 세계에 진입하기 시작할 때 영적 시야가 열림으로 인해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가 내 영혼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말씀이 깨달아지고, 예수님을 전심으로 믿게 되고, 내 자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모든 것을 주장해 주심으로 인해 나의 유익을 구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학식과 교양을 얻기 위한 자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니라 행동하는 자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다. 말씀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읽어도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지성으로 접근하려 들기 때문일 것이다. 영성을 통해 말씀과의 접촉이 일어날 때 우리 행동의 변화와 삶의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았다. 배움으로만 하나님을 알았을 뿐, 어떤 영적 깨달음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말씀이 주장하는 삶을 흉내만 내었을 뿐, 영혼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엄청난 동기부여는 경험할 수 없었다. 흉내는 억지로 내는 것이다. 억지로 하는 일에는 기쁨이 있을 수 없다. 의무감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억지로 사는 삶이 아니다.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나를 주장하시는 것이다. 그 안에는 기쁨이 있다. 의무감으로 믿음의 삶을 살지 않는다. 강박감으로 그러한 삶을 살지 않는다. 기쁨이 주는 자발적 의지로 믿음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 오늘 말씀 속에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을 보면, 이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어떤 기적을 보고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기적을 통해 신적 능력을 입증하셔야만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님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동일한 말씀을 바리새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말씀 속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서 신적 능력을 입증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증언을 받은 자임을 주장하고 계신다. 오늘 예수를 믿게 된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하나님의 아들임을, 그가 진짜 메시아임을 알게 되었다. 거꾸로 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제대로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예수님을 증언하시고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예수를 인정하게 만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말씀에는 예수님을 알게 하는 능력이 있다. 말씀은 예수님을 가르켜 쓰여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쓰여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그렇기에 말씀 중심의 신앙, 말씀에 근거한 신앙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게 만든다. 그러나, 기적 중심의 신앙은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길로 빠지게 만들 위험성이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근처에는 많은 무리들이 떼를 지어 따라다녔고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피하셨다. 그들의 열심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는 일을 가로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을 강하게 추진하실 때마다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갔다. 신앙의 근거는 말씀이지, 기적이 아니다. 기적은 신앙에 입문하는 통로가 될 수는 있어도, 기적 자체가 예수님의 메시아적 정당성을 대변할 수 없다. 예수님의 메시아적 정당성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증언에서 나오는 것이다. 기적을 경험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그 분이 베푸시는 기적은 나의 유익과 만족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아는 일,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로 귀결되어야 한다. 말씀이 임하면 기적이 없어도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는다. 그러나, 기적이 아무리 많이 일어나도 말씀이 임하지 않으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금새 사그라들고 만다. 말씀이 임하지 않으면, 눈 앞의 기적을 믿은 것이지,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그 분 자체를 믿은 것이 아니다.
- 바른 신앙의 기초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증언으로 가장 완벽하게 메시아적 정당성을 갖추게 된다. 예수님이 메시아인 가장 확실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셨기 때문이다. 그 분이 베푼 엄청난 기적과 사건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만들어주지 못한다. 어두움의 영도 기적을 이용해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전심으로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도 말씀의 능력이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영적 접근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은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서는 그 말씀을 깨달을 방법이 없다. 성경은 배움과 학식이 두둑한 학자가 자기의 머리를 쥐어짜내 쓴 이야기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은 저자에게 주신 영감을 통해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이 아니고서는, 영성을 통한 접촉이 아니고서는 말씀의 영감을 주신 분과의 교감이 일어날 수가 없다. 그 분과의 교감 없이는 그 분의 뜻을 알 수 없다. 종교 지성으로 말씀을 읽은 바리새인들은 말씀을 주신 분과의 실질적인 교감을 할 수가 없었고, 그 결과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 분이 친히 증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도 없었던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영성의 가벼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신앙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율법' 그 자체였다. 말씀 위에 서 있는 신앙이었다면, 말씀이 그들의 생각과 행동과 언어를 주장했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정신이 그들의 삶을 주장하였을 것이다. 타인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사랑으로 돌보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참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 위에 그들의 신앙이 서있는 결과, 율법이 그들의 생각과 행동과 언어와 모든 것을 주장하여 다른 사람을 율법의 잣대로 정죄하고 판단하고 비난하며 자기 자신의 도덕성을 정당화하게 된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이 기적과 응답 위에 서 있을 것이다. 기적이 그들의 생각과 행동과 언어를 주장하는 결과,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기적이 구원보다 더 높은 가치에 올라감으로 인해 자신의 유익을 달성하는 일에만 목을 매달며 살게 될 것이다. 말씀 아니고서는 우리의 신앙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갈 도구가 없다. 말씀이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장할 때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될 것이다. 말씀만이 온전한 신앙생활의 답이다. 말씀만이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답게 하셨고 말씀만이 우리의 믿음을 더욱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말씀이, 말씀에 의한, 말씀을 위한 신앙생활만이 천성을 향해 전진하는 순례자의 힘과 능력이 될 줄로 믿는다. 말씀이 나로 하여금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말씀에 의하여 나의 삶이 운영되어지고(말씀이 나의 삶을 주장하고), 말씀을 이루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다운 신앙생활인 줄로 믿는다. 모든 힘과 능력의 근원이 말씀인 줄로 믿는다. 말씀과 기도의 영성이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제대로 알아보게 만들고 우리를 당신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도록 움직이게 하는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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