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청아 '도시 속 마을공동체' 강의…"아이·청년·직장인에게 잃어버린 꿈 찾아 주고파"
축소 | ▲ 도시 마을공동체 강의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도시에서 일구는 마을공동체'를 주제로 한 강의를 4월 26일 열었다. 김미숙 선생이 '결혼·임신·출산·육아·교육'을, 고경환 씨가 '마을 밥상'을, 박지혜 간사가 '청년·학생을 만나는 삶'을, 신원 팀장이 '직장인의 삶'을 주제로 강의했다. ⓒ 임안섭 |
재개발 지역이나 아파트촌 위주인 서울 도시에서 마을공동체가 깨진 지는 오래다. 한 지역에 오래 정주하는 이들은 갈수록 줄어든다. 재개발되면 다른 곳에 이주할 수밖에 없고, 전월세로 사는 이들은 다른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이런 현실에서 마을공동체를 회복하는 건 꿈같은 얘기다.
하지만 꿈을 현실로 살아내는 이들이 있다. 도시에서 16년째 마을공동체를 일궈 온 서울 강북 인수마을에 있는 마을공동체다. 기독청년아카데미(기청아·오세택 원장)는 '도시에서 일구는 마을공동체' 강의에서 인수마을공동체를 소개했다. 김미숙 선생(도토리공동육아어린이집), 고경환 씨(아름다운마을밥상), 박지혜 간사(대학생 단체), 신원 팀장(로맥스테크놀로지)이 4월 26일 강의했다.
4명의 강사는 서울 강북 인수마을에서 함께 마을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지난 4월 19일 '농촌에서 일구는 마을공동체' 강의에서 소개한 강원 홍천마을과 교류하는 관계에 있다. (관련 기사: 똥오줌 거름 쓰고, 흙집 짓고, '농(農)생활' 가르치고) 육아·교육 현장, 마을 밥상, 기독 대학생 단체, 직장 터전에서 소명을 좇아 살아가는 이들이다. 마을공동체에서 같이 밥 먹고, 깊이 사귀는 삶이 자기 활동 현장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강사들은 마을공동체 생활을 토대로 자기 일을 어떻게 펼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마을에서 '우리 아이'로 함께 키우다
축소 | ▲ 도시 마을공동체 강의 김미숙 선생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을 마을 공동체 지체들과 같이 풀어 나갔다. 마을에서 육아 품앗이와 공동육아를 하면서 아이들을 함께 키워 나가고 있다. ⓒ 임안섭 |
김미숙 선생은 임신 중에 마을공동체에서 살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을 마을공동체 사람들과 같이 풀어나갔다. 마을에서 육아 품앗이와 공동육아를 하면서 아이들을 함께 키워나갔다. 지금은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세운 도토리어린이집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김 선생은 결혼·임신·출산·육아·교육 과정에 미치는 자본의 질서를 극복해가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결혼을 치르는 과정에서 드라마나 광고가 부추기는 소비 욕망에 얼마나 길들어 있는지 경험했습니다. 마을공동체에서 지내면서 자본·부동산에 휘둘리지 않고 결혼하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혼인의 때를 정하고 어떤 의미를 담아 어떤 형식으로 예식을 치를지 함께 의논합니다. 신랑신부의 고백과 함께하는 이들의 축하를 담은 소박하고 즐거운 잔치를 함께 준비하고 맞이합니다.
임신했을 때 마을공동체에서 임신·출산·육아를 함께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형아 검사나 입체 초음파 같은 것들로 미리 아이의 상태를 알고자 하고, 병원의 관례에 따라 아이의 예방접종 여부를 정하고자 하는 비주체적인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배 속 아이와 교감하려 하고, 자연분만을 하고자 공부하며 운동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조산원에서 남편과 뱃속의 아이와 함께 호흡을 맞춰 출산한 경험은 생명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갖게 되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공동체 사람들이 처음 인수마을에 터를 잡을 때부터 아이 데리고 마실 다닐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집을 구했습니다. 육아하는 이들이 고립되거나 소외되지 않고 함께 일상을 나눌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가정 간에 육아 품앗이를 합니다. 마을 이모·삼촌(마을 아이들이 어른들을 부르는 호칭)들이 함께합니다. 육아 방식, 생활 습관, 부부 관계, 소통 방식까지 서로 얘기하며 조언합니다. 육아 품앗이는 단지 서로 돌아가면서 아이들 돌봐주는 활동만이 아니라 내 아이, 네 아이를 우리 아이들로 함께 기르는 적극적인 선택입니다.
2013년 하루에 한두 시간씩 육아 품앗이를 하던 부모들이 마음을 모아 공동육아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도토리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출발입니다. 부모·교사들과 이모·삼촌들이 함께 기금을 모아 어린이집 터전을 구했습니다. 수리할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마을 이모삼촌들이 같이 청소하고 페인트칠도 하고 벽화도 그렸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들은, 두루두루 살펴주는 관계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건강도 사귐도 살리는 '밥상 공동체'
축소 | ▲ 도시 마을공동체 강의 고경환 씨(사진 오른쪽)는 아름다운마을밥상에서 같이 일하는 이들과 함께 건강한 먹거리로 밥을 지으며 밥상 공동체 공간을 꾸려 가고 있다. 밥상은 같이 밥 먹으며 삶을 나누고, 아이들에게 밥상머리 교육이 이뤄지고, 육아 품앗이의 장이 되는 공간이다. ⓒ 임안섭 |
고경환 씨는 아름다운마을밥상(마을밥상)에서 같이 일하는 이들과 함께 건강한 먹거리로 밥을 지으며 밥상 공동체 공간을 꾸려가고 있다. 마을밥상에는 영유아부터 초등학교 어린이, 청장년 어른 등 공동체 사람들이 찾아와 밥상 교제를 나눈다. 같이 밥 먹으며 삶을 나누고, 아이들에게 밥상머리 교육이 이뤄지고, 육아 품앗이의 장이 되는 소중한 공간이다.
"아름다운마을밥상은 사람들이 돌아가며 밥상을 차리는 공동 밥상 형태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식당 형태로 자리 잡은 건 2009년부터였습니다. 마을밥상은 공동체 지체들의 안색을 살피고, 서로 일상을 나누는 사랑방입니다. 갓난아이부터 학생들, 육아하는 엄마와 아빠, 직장인 등 공동체 지체들이 함께하는 공간입니다. 아이들과 같이 오는 엄마나 아빠가 편안하게 밥을 먹습니다. 부모뿐 아니라 마을 이모·삼촌들이 젖먹이들도 함께 돌봅니다. 지역 주민도 함께 이용하는 식당입니다.
우리 땅에서 자란 친환경 농산물로 음식을 만듭니다. '어떤 것을 먹을까'와 '어떻게 먹을까'를 같이 고민하면서 건강한 먹거리로 밥상을 차립니다. 제철과 절기에 맞는 음식을 만들고, 현미나 오분도미 잡곡밥을 차립니다.
마을밥상에서 나온 음식 부산물은 모아서 강원 홍천마을로 보냅니다. 음식 부산물은 농사짓는 데 필요한 거름이 됩니다. 농촌과 도시 마을이 서로 교류하며 생명 순환 농사에 함께하는 것이죠.
공동체 사람들이 주로 마을밥상을 이용하면서 생활양식의 변화가 생깁니다. 가정집의 부엌살림이 줄어듭니다. 집에서 잘 안 쓰는 식기류나 주방 도구, 가전제품을 밥상에 기증하는 일이 생깁니다. 집집마다 정수기를 두지 않고, 밥상에 있는 정수기를 함께 씁니다. 집에서 안 쓰는 물건들을 나누는 장이 되기도 합니다. 밥상을 돌잔치나 모임 공간으로 쓰기도 합니다."
청년들에게 '잃어버린 꿈' 되찾아 주고파
축소 | ▲ 도시 마을공동체 강의 박지혜 간사는 기독 대학생 단체에서 활동하며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박 간사는 대학에서 경쟁과 취업 준비에 시달리는 학생이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임안섭 |
박지혜 간사는 기독 대학생 단체에서 활동하며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청년들과 동고동락한 지 햇수로 15년째다. 박 간사는 대학에서 경쟁과 취업 준비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학생들을 만나면서 힘에 부칠 때도 있었지만, 마을공동체 생활이 박 간사를 붙잡아 주었다.
"수많은 이들이 대학 진학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학창 시절을 보냅니다. '대학에만 가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안고 지냅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서 맞는 현실은 '취업 전쟁'입니다. 옆에 있는 친구는 이겨야 할 경쟁자가 됩니다. 영어 점수, 봉사 활동, 공모전, 인턴 등 최소한 남들만큼 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새내기들이 종종 울먹이며 이야기합니다. '대학에 오면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똑같다. 다시 또 경쟁해야 한다.'
이런 현실에 휩쓸리지 않으려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동아리 방에서 밥을 자주 해 먹습니다. 혼자 밥 먹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로 많은데, 밥상에 둘러앉아 교제하고 삶을 나누는 것을 중요한 문화로 일구어 갑니다. 학생 몇 명이 서로 더 긴밀하게 만나고 잘 살아가고자 학교 앞에 '공동체 방'을 꾸렸습니다. 함께 생활 규율을 지켜가고, 배려하며 지내는 것을 몸에 익힙니다.
학생들과 대학교라는 현장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왔습니다. 마을공동체가 없었다면, 이 일을 감당할 힘이 없었을 겁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함께 보낸 학생들이 서로에게 끈끈한 동지가 되어 졸업한 이후에도 더불어 살아가길 바랍니다."
'직장 위한 삶'보다 '삶 위한 직장'을
축소 | ▲ 도시 마을공동체 강의 신원 팀장은 10년 차 직장인으로 마을공동체에서 직장에서 부딪치는 고민을 함께 나누고 격려하며 지낸다. ⓒ 임안섭 |
신원 씨는 10년 차 직장인이다. 매일같이 한강을 가로지르며 서울 강북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한다. 풍력 발전기를 유지·보수하는 일을 하면서, 주말에는 강원 홍천에 있는 고등·대학 통합형 대안학교 삼일학림에서 과학을 가르친다. 마을공동체에서 다양한 직장에서 일하는 이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격려하며 지낸다.
"'직장을 다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 다니다 보면 관심사가 달라 깊이 관계 맺기 어려운 동료들이나 불합리한 조직 구조가 힘들게 다가옵니다. 생계를 위한 돈벌이 외에 다른 목적을 찾기 어렵기도 합니다. 한 개인이 어떤 변화도 도모하지 못할 것 같은 거대한 벽처럼 다가옵니다.
직장 생활을 잘 하기 위해 처음에는 잘 견디고 버티야 합니다.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잘 버텨내는 것 자체가 큰 수확입니다. 잘 버티는 것이란, 그 조직을 바꾸어 낼 위치에 있지 않고, 아직 대안을 만들 역량이 없기에 자기 생명력을 보존하며 지내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자리 잡고 역량을 쌓으면 조금 더 적극적인 시도를 합니다. 습관적인 야근 문화를 없애기 위해 퇴근 시간을 제한하고, 팀원들과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관계를 넘어서서 만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출산을 앞둔 남성 팀원을 위해 배치를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휴가 문화도 바꾸고자 애씁니다. 마을에 있는 직장인들은 휴가 기간 강원 홍천마을 터전으로 가곤 합니다. 저도 지난 몇 년 동안은 휴가철에 홍천에서 대안학교 건물과 집을 짓는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직장에서 늘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마을에서 함께 일하며 세속에 물든 마음을 정화하고 휴가 이후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일하면서 어떻게 하면 세속적이고 반생명적인 힘에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직장이 가진 절대화된 위상을 상대화하고, '직장을 위한 삶'에서 '삶을 위한 직장'으로 바꿔야 합니다. 공동체적 삶을 중심에 두고 일한다면, 직장에서 당당하게 일하면서 반생명적인 노동 문화에 맞설 수 있습니다."
축소 | ▲ 도시 마을공동체 강의 수강생들은 마을 공동체 밥상 운영, 결혼과 육아 문화 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놓았다. ⓒ 임안섭 |
5월 3일 강의에서는 최철호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원장이 '농촌과 도시가 서로 살리는 농도 상생 마을공동체'를 주제로 강의한다. 농촌과 도시 마을공동체가 서로 교류하고 연대하는 모습과 마을공동체 개척 사례를 살펴본다. 분단의 아픔 속에 있는 한반도의 평화를 꿈꾸고, 미래 문명의 희망을 찾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문의: 02-764-4116, (기청아 누리집), (기청아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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