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교육/7. 초등교육

[스크랩]미국의 수학교육_글/조윤경

양선재 2015. 9. 22. 18:14

(13) 미국의 수학교육_글/조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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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크레존 담당자
  • 등록일2015.09.21
  • 조회수804

미국의 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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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열심히 학교에 적응 중이다. 나한테는 이곳 학교에 다니는 게 재미있다고 하는데, 가끔씩 별 일 아닌 일로 눈물이 그렁그렁하는 걸 보면 꽤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안쓰러워지기도 한다. 다행인 건 반 친구들이 다들 참 착하고 아이를 잘 도와준다는 사실이다. 학급 활동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짝꿍 남자아이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다고 했다. 입학식 날 얼핏 봤는데 아주 점잖고 똑똑하게 생긴 아이였다. 그날도 조용히 앉아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 감사한 일이야. 선생님도 좋으시고 엄청 신사적인 멋진 짝꿍도 만나고 말이야.”

 

그런데 오늘 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완전히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엄마, 오늘 수학 시간에 문제를 풀고 짝이랑 서로 바꿔서 맞춰보는 활동을 했어요. 틀린 문제는 서로 설명해주라고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그런데 내 짝꿍 토마스(이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가명을 쓴다)랑 맞춰봤는데 하나도 맞은 게 없이 다 틀린 거예요.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나도 충격적이었다. 그 똑똑하고 멋진 토마스가?

 

“그래서 어떻게 했어? 네가 설명을 해줬어?”

“아니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Mrs. Foster, could you help him?’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오셔서 토마스에게 따로 설명해 주셨어요.” 

‘문제를 한 두개 틀렸어야 내가 어떻게라도 설명해 주겠는데...’ 딸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하여 우리 모녀에게 토마스는 호프스쿨 최대의 반전남이 되었다. 미국의 수학 교육은 뭐가 문제기에 토마스를 ‘지못미’ 상태로 만들었을까? 사실 이곳 초등 4학년 수학 교과서를 살펴보니 우리나라 교과서보다 좀 더 단순하고 쉬워 보이기는 했다. 그래도 아이가 연산은 쉽게 잘 했지만, 실생활과 결부된 스토리텔링이 되어 있는 문제를 읽고 서술형으로 답하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 어려워했다. 매일 매일 한 장씩 문제를 풀고 부모 서명을 받아 학교로 가져가는 수학 숙제가 있는데, 두 세 문제씩 끼어 있는 이런 서술형 문제를 보면서 수학이 다른 나라 언어와 사고방식을 배우는 데에도 참 좋은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규 수업과 별도로 extramath라는 온라인 연산 숙제를 내주는걸 보고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너무나 기초적인 연산 연습이었기 때문이다. 4학년인데 설마 모든 아이가 한국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의 연산을 별도 숙제로 하고 있단 말인가? 아니면 레벨에 상관없이 무조건 1단계부터 해야 되기 때문에 우리 아이만 이런 쉬운 연산을 하게 하는 건가? 아니면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 영어가 부족하다고 수학 수준까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데 토마스의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학생들 간의 실력 편차가 큰 탓에 하향 평준화된 폐해인 것 같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 교육을 예찬하면서 미국 학생들의 수학 능력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고, 수학·과학 베이스로 다른 과목들을 융합하는 스팀 교육 또한 강화하고 있다. 이 학교도 수학 교육에 꽤 정성을 기울이고 있어서 일주일 내내 매일 매일 수학 수업을 한다. 그런데도 공교육·사교육 총력전으로 ‘죽어라’ 수학공부를 시키는 우리나라에 비해 이곳의 수학 교육은 정말 ‘널널하다’. 딸의 얘기를 들어보면 수업시간에 주로 수학을 이용한 게임을 많이 시키는 것 같았다. 하나의 개념을 이해할 때까지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시간을 들이면서 ‘재미있게’ 수업을 하는 것이다. 양 쪽 모두 장단점이 있어서 어느 교육이 나은지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는 물론 어렵다.

 

아이를 데리고 1년 미국에 간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받았던 조언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수학이 뒤처지지 않게 문제집을 잔뜩 사가지고 가서 풀게 하라는 거였다. 잔뜩은 아니지만 어쨌든 문제집을 사가지고 왔고, 가급적 조금씩이라도 실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다른 아이들 하는 만큼은 시켜야지’라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경쟁모드로 돌입하게 되는 데 비해, 여기서는 아무래도 마음이 느긋해져서 오로지 아이의 페이스를 살피게 되고 공부하는 양의 결정도 아이에게 맡기게 된다. 달라진 점은 한국에서 숨쉴 틈 없이 어려운 문제들을 많이 풀어내야했던 때에는 아이가 서술형 문제가 나올 때 걸핏하면 텅 비워둔 채 별표를 쳐놓곤 했었는데(“진짜 진짜 진짜 모르겠을 때 별표 치라고 했쟎아?” 라고 약간 언성을 높이면 아이는 늘 억울해하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모르겠어서 별표를 친 것이라 주장했다), 요즘은 한 문제에 대해 꽤 오래 생각을 해보면서 자기 나름대로 답을 써보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다시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호프스쿨이 미국에서 약간 시골학교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대체로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 수학을 중시하는 비중처럼 이 나라 초등학교에서 수학을 중시하는 비중이 높지는 않은 것 같다. 그보다 정직한 사람, 올바른 시민이 되기 위한 교육, 독립심, 자존감 등을 키워주는 교육에 훨씬 높은 비중을 두는 것 같았다. 오로지 내 관찰에 의존한 바대로 거칠게 정리해보면 우리나라가 뛰어난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면 이곳은 자립적으로, 그리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을 키우기 위한 교육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할까?

 

이곳 부모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아이가 (의도적이든 아니면 미처 생각을 못해서 그렇게 했든 간에)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때 특히 따끔히 아이를 나무란다. 아주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아이를 오라고 부른 다음(이걸로 기선제압 완료) 아이의 눈을 뚫어지게 보면서 네가 그렇게 행동했을 때 다른 사람의 기분은 어떨 것 같니, 너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상대방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너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되겠니...하며 굉장히 논리적으로 아이와 대화하는 부모들을 꽤 여럿 보았다.

 

어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학부모 대상 메일의 내용을 보아도 그렇다.

우리는 매우 멋지게 학기 첫 출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도서관 사서 선생님인 Mrs. Wasem이 말하길 “도서관에서 A+짜리 활동을 했어요. 얼마나 멋진 학급인지요!”

미술 선생님인 Mrs. Sundell은 “이 학급 굉장히 멋졌어요. 아이들이 정말 훌륭하게 행동했답니다.”

 

학부모님들, 부디 여러분의 아이들에게 그들이 좋은 태도와 존중하는 자세로 학교에서 멋진 활동을 했다는 걸 전해 들었다고 알려주세요!

 

Elaine Foster 

형편이나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아이의 교육만은 최고로 시키겠다는 우리의 교육열은 세계 그 어느 나라도 따라갈 수 없다. 사실 그 힘으로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했고, 뛰어난 한국의 인재들이 전 세계를 누비며 활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누가 나에게 ‘네 딸을 뛰어난 인재로 기를래 아니면 자립심 있게, 그리고 더불어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기를래’라고 묻는다면? 둘 중 반드시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의 솔직한 대답은 무엇일까?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뒷받침을 하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세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굳이 나에게 고르라고 하면 나의 대답은 후자다. 진심으로 망설임 없이 후자다.

 

대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리고 그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들게 되었다. 학생들을 쭉 지켜보면 학점은 평균정도이지만 참 바르고 괜찮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학생이 있다. 이런 학생은 분명 사회에 나가서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자기 할 일을 잘 해나갈 사람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추천서를 써주게 된다. 결과적으로도 학점이 좋은 학생보다 이런 학생들이 취업도 잘 하고,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잘 다니고, 나한테 가끔 연락도 주고 학교로 찾아와 직장 얘기를 들려준다.

 

어린 시절에 이런 부분을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고 자아와 인격이 형성되면 커서는 성격이나 태도를 고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정말 아주 뛰어나서 특별 교육이 필요한 소수의 아이들은 예외로 하더라도, 대부분의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괜찮은 사람’으로 커야하지 않을까? 수학영재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자신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일이 아닐까?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 UCSB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