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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장 18-28절 daily bread
2010/10/05 17:04 http://blog.naver.com/younsilh/1009521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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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5일, 화요일 / 작성: 이창호
본문: 사도행전 18장 18-28절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2차전도 여행의 마지막 부분으로 고린도에서 수리아 안디옥까지의 긴 귀로 여행을 불과 몇 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의 큰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령님의 은혜로 일 년 육개월 동안 머물면서 고린도 교인들과 형제의 우애를 나누었습니다. 또한 당시는 갈리오 총독의 옹호까지 받게 된 상황이라 바울로서는 가장 편하게 사역 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인간관계와 당시 상황을 볼 때, 바울은 그곳에서 더 오래 머물면서 편하게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형제처럼 지냈던 교인들을 떠나 수리아 안디옥으로 떠납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깍았더라”(18b) 이 구절로 미루어보아 바울이 고린도 선교 사역과 관련해서 어떤 목적을 두고 일정 기간의 나실인 서원을 했고,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그의 서원을 들어주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실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기로 서원하고 포도에서 산출되는 모든 것을 먹지 않고, 어떠한 시체도 만지지 아니하며,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습니다(민 6:1). 서원은 일평생일 수도 있고, 최소 30일 이상의 특정기간을 정할 수 있었는데, 특정기간이 끝날 때 율법에 정한대로 서원기간동안 자란 머리카락을 하나님께 바치고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민6:13-20). 따라서 18절 말씀을 통해 바울은 고린도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삶의 살았고,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사실과 함께, 바울은 눈앞에 보이는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린 서원이 이루어졌음에 감사하며 이별의 아픔을 감내하고도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는 신실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본문의 바울의 모습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기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사역을 하면서 자신의 지혜나 생각에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달렸습니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새벽기도로 시작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고린도 사역을 위해 바울이 전심을 따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 주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역이 나의 사역이 아닌 하나님의 사역임에 감사하며 이 사역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능의 옷을 덧입혀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상황과 사람의 뜻에 민감했다면 그는 고린도의 사랑하는 형제들과 좀 더 있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서원을 들어주셨음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고린도 형제들을 뒤로 하고 떠났습니다. 또한 안디옥으로 가는 도중에 잠시 들렸던 에베소 교인들의 더 머물러달라는 간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21)하고 에베소를 떠난 바울의 모습에서도 그가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역사가 평탄치 않았던 것은 위정자들이 국민의 뜻에 민감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기독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내세우기에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따라서 우리가 서 있는 곳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늘 인지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24-25) 에베소는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로서 동쪽으로는 예루살렘과 수리아 안디옥으로, 서쪽으로는 헬라와 로마로 나아가는 산업의 중심도시이며, 당시 고대 근동의 풍요의 신인 아데미 여신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우상 숭배가 만연한 에베소에 바울이 떠나자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라는 유대인이 왔습니다. 성경은 아볼로의 고향을 알렉산드리아라고 굳이 밝히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이 애굽을 정복한 후에 애굽 북쪽 지중해 연안에 건설한 도시로, 상업의 중심지요,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B.C. 280년경에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서인 70인역(LXX)이 이곳에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리겐 같은 유명한 신학자도 알렉산드리아 출신입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볼로는 당시 수사학에도 능통하여 언변이 좋고, 학문적인 배경도 좋을 뿐만 아니라 구약에도 능통한 자라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성경을 펼치지 않고도 즉석에서 본문을 인용할 수 있으며, 그것을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 인용하였는가 까지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성경에 능통한 자'였고, 그는 성경 본문의 뜻과 의미를 이해하였고 그것들의 사용법과 적용법을 알고 있었으며, 성경을 근거로 강력한 변론을 전개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유대인인 그가 어려서부터 주의 도를 배웠다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상당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 곧 회개의 차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회개만으로는 신앙의 뿌리가 온전하지 못합니다. 신앙의 뿌리는 회개를 거쳐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고백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까지 내려져야 합니다. 회개의 세례만 알아가지고는 하나님의 성령이 아볼로의 사역에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율법교육을 잘 받았으며,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가르치고, 다방면에 학식이 풍부하나,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본질을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볼로를 복음의 세계로 이끌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바울이 고린도에서부터 함께 했다가 에베소에 남겨두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였습니다. 아굴라 부부는 천막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한 사람입니다. 회당에서 아볼로의 설교를 듣고 있던 아굴라 부부는 그가 복음의 핵심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볼로를 집으로 초대해서 그에게 하나님의 도(복음의 본질)를 더 정확하게 풀어 말해주었고, 이후 그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습니다”(28). 아볼로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깨달았다고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신앙이 가장 침체되었던 때는 아이러닉하게도 프랑스에서 신학교에 입학한 1학기 때였습니다. 신학공부를 하면서 지식적으로 과거에 비하면 많은 것을 습득하게 되었지만, 레포트와 시험에 밀려 지식습득에만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을 싸늘하게 식어있음을 경험했습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를 떠난 열심을 봅니다. 지식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아볼로의 한계 속에서 몸부림을 칩니다. 그래서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은 머리로만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두 번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언변이 유창하고 성경에 능통한 아볼로가 천막을 만드는 아굴라 부부의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에서 아볼로는 겸손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우님들과의 심방을 통해서 제가 교우님들께 드리는 것보다 제가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 20대 청년을 담당할 때도, 30대 청년들을 담당할 때도, 장년들과 함께 하는 지금 역시 심방을 하면서 교우님들의 신앙의 삶에서 제가 느끼고 제가 반성하는 부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자만처럼 위험한 생각은 없습니다. 정상에 올라갔다 추락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자만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사람에게도 겸허하게 배울 수 있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핵심을 통해서만 세상의 권세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의 핵심을 깨달은 그는 이후 형제들의 적극적인 추천과 함께 고린도로 가서 열심히 사역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2절에서 고린도교회가 아볼로파와 바울파로 나뉘었다고 할 정도로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이자 이는 기독교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유럽에서 산업화에 따른 탈기독교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이슬람이나 동양 종교가 창궐하게 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그들이 복음의 핵심인 “예수는 그리스도”를 잊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삶속에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핵심을 증언하며 세상의 권세를 물리침으로 우리가 디디고 있는 곳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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