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씨 일행은 7월 산행에서 등산가방 절반이 차도록 다래를 땄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처럼 마음이 즐거웠다. 충만감. 여느 등산객들처럼 죽자고 산자락만 오르던 이들이 얼마 전부터 이른바 ‘약초산행’을 하면서 생긴 마음의 변화다. 꾼들처럼 산삼 같은 걸 캐서 재미 보자는 취지는 아니었고, 취미 삼아 풀이름도 알아보고 야생화도 좀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돌아다니다보니 지천에 널린 게 다 약초였다. 등산도 하고 약초지식도 쌓고 집으로 들고 가는 ‘부수입’도 생기는 ‘일석삼조’가 됐다. 왜 진작 자연에 관심을 갖지 못했는지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우선 어지간한 산이면 등산길 초입에서 흔히 보이는 풀들. 관심이 없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들인데 사실은 다 약초다. 관절을 튼튼히 하고 어혈을 푸는 쇠무릅(우슬), 자연산 비아그라 비수리(야관문), 축농증과 비염에 쓰는 도꼬마리(창이자), 기미와 습진에 좋은 뱀도랏(사상자), 폐의 기운을 돋우는 맥문동, 꽃은 천연 해열제이고 줄기는 신경통과 담통에 효과가 큰 금은화(인동), 신장을 튼튼히 하는 기생식물 새삼(토사자), 부인병의 성약인 엉겅퀴(대계)·조뱅이(소계)·익모초, 심장병과 폐농양, 대상포진에 특효가 있는 하눌타리(과루실), 소갈(당뇨병)의 특효약 하눌타리 뿌리(천화분) 등이 눈에 띈다.
알면 약초, 모르면 잡초
등산객이 산에서 약초를 촬영하고 있다.
산속으로 좀 더 들어가 몸에 적당히 땀이 나기 시작하면 보이는 약초들이 있다. 푸른빛 꽃이 관상용으로도 괜찮겠다 싶은 간장약 용담초, 기관지와 폐에 좋은 도라지(길경), 뿌리를 씹으면 혀끝이 얼얼해오는 신경통약 족도리풀(세신), 위장병에 좋은 삽주(백출,창출), 피로회복제인 둥굴레(옥죽), 출혈을 멎게 하는 오이풀(지유), 중풍으로 수족을 못 쓸 때에 긴요한 진교와 천남성, 계곡 주변에 사람키만큼 크게 자라는 두통약 구릿대(백지), 관절통 근육통에 쓰는 강호리(강활), 아토피와 무좀에 좋은 봉황삼(백선), 요통에 쓰는 어수리(독활), 상기도염이나 기관지염에 효과가 큰 바디나물(전호), 약방의 감초만큼이나 많이 쓰이는 보혈약 승검초(토당귀)…. 어디선가 진한 향내가 발길을 이끈다 싶으면 어김없이 더덕을 발견하게 된다.
붉나무에 기생해서 주렁주렁 달라붙은 오배자, 참나무 기생식물인 항암제 겨우살이, 자극성이 강한 향신료 산초열매, 뼈에 좋다는 딱총나무, 빨갛게 익은 꾸지뽕, 야생 오가피 열매 등도 Y씨 일행의 눈길을 벗어날 수 없다.
Y씨는 올해 다른 때보다 더 유념해서 산을 다녀선지 다래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봄부터 앙증맞은 다래꽃을 눈여겨봤었는데 올여름 쏠쏠한 수확을 안긴 것이다. 술꾼과는 거리가 먼 Y씨도 다래로 술을 담가 다래주를 먹어보려 한다.
다래는 머루와 함께 대표적인 야생과일로 꼽힌다. 전국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자라는 다래는 한방에서 미후도라고 한다. 손가락 굵기 정도의 둥근 열매로, 빛깔은 푸르고 단맛이 강하며 9∼10월에 익는다. 열을 내리고 갈증을 멈추게 하며 이뇨작용도 한다. 만성간염이나 간경화증으로 황달이 나타날 때, 구토가 나거나 소화불량일 때도 효과가 있다. 비타민 C와 타닌 성분이 많아서 피로를 풀어주고 불면증에도 도움을 준다.
약리적으로 비타민과 유기산, 당분, 단백질, 인,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칼슘, 철분, 카로틴 등이 풍부해 항암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위암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데 효과가 크다. 천성적으로 약하게 타고난 소화기에 늘 조바심을 갖는 Y씨에게 영약이 될 것 같다.
Y씨 일행의 다음 산행 목표는 꾸지뽕 따러 가기다.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꾸지뽕나무 몇 그루를 찜해놓고 익기만을 기다렸던 터. 정력을 강화시킨다니 그 기다림이 더 감질나다. 이 역시 술로 담가 선선한 달밤에 풍월주인(風月主人) 흉내라도 한번 내볼 생각이다. 하수오, 오미자, 천문동, 삽주, 산초, 딱총나무열매 등으로도 술을 담글 만하고, 잡다한 약초를 한데 모아 효소를 만들면 건강식품으로 즐길 수 있다.
Y씨에겐 뭇산이 자신만이 소유한 곳간처럼 느껴진다. 공짜 ‘수확’을 할 때면 큰돈 되는 것도 아닌데 터무니없이 마음이 부자가 된다. 이것은 또 그가 일상생활에서 힘을 내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여기는 숲 속 약초 천국’
공무원으로 일하는 K씨는 7월 중순 토요일 첫새벽에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강원도 정선의 깊은 산골이다. 서울과 천안 등 각지에서 차를 몰고 달려올 정겨운 이들을 생각하며 카메라를 다시 점검한다. 이번 산행의 목적은 솔나리를 보는 것이다. 멸종위기종인 솔나리를 카메라에 담는 것. 나머지는 모두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