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과 절제
운전을 하다보면, 비신사적으로 운전하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소형 국산차를 몰기 때문에 편견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유달리 외제차나 큰 차를 모는 사람들이 양보에는 인색하고 새치기에는 익숙한 것 같다. 물론 큰 차, 외제차를 모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큰 차나 외제차를 모는 사람들이 모두 돈이 많고, 권력이 많지는 않다. 사업, 연비, 안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큰 차나 외제차를 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차를 몰려면 아무래도 국민 평균보다는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양수준도 평균보다는 높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상당수는 그런 것 같지 않다.
교양이란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이수함으로 갖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옷을 맵시 있게 입고, 화장을 세련되게 했다 해서 갖춰지는 것도 아니다. 예술이나 철학을 모르고, 옷이나 화장이 어설퍼도 다른 사람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말과 행동을 하고, 부당하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교양인이다. 역으로 제아무리 돈이 많고 계급이 높아도 도로에서 새치기를 하고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면 교양 없는 사람이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돈이 좀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교양수준도 같이 높다. 어느 정도 교양이 있어야 돈도 벌고, 지위도 올라갈 수 있고, 돈이 많아지거나 지위가 높아지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지게 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사회가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그게 바로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제' 문화다. 만약 교양이 없으면서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으면 사람들은 그를 무자격자로 낙인을 찍어버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교양과 돈, 교양과 지위는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비례하는 것 같다. 돈이 많고, 권력이 높은 사람들 가운데 교양수준이 높다고 인정받는 사람은 너무 드물다. 돈이나 권력은 특별히 경계하지 않으면, 보통 사람을 거만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인격을 무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처럼 무시 받는 사람들이 힘 있는 사람들을 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러워하고 두려워하면 악순환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교양은 자연적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키케로(Cicero)가 표현한 것처럼 마음을 갈고, 닦음 (cultura animi)으로 교양이 생겨난다. 모든 자연인이 가진 동물적인 본능이나 하급욕망을 절제해야 비로소 교양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절제를 4대 미덕 가운데 하나로 존중했고, 명심보감에도 “사람이 아니면 참지 못하고, 참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非人 不忍, 不忍 非人)라는 말이 있다. 교양교육은 다름 아닌 절제의 훈련이다. 지난 7월 21일에 시행된 <인성교육진흥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려면, 학생들이 절제를 연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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