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엘리엇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결정하는 주주총회가 오는 7월 17일에 열린다. 2014년 12월에 53,000원으로 공모된 제일모직 주식은 증시에서 거래가 시작되자마자 가격이 두 배로 뛰면서 11만원을 기록했고, 연말에는 종가가 15만원을 넘어버렸다. 공모주 청약 때의 제일모직 주가를 기준으로 하면, 한 달도 못되어 세 배가 된 셈이다. 이는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이재용 부회장으로 삼성그룹을 승계하는 방법으로 제일모직을 활용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며, 실제로 지난 5월 말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1대 0.35의 비율로 합병하기로 전격 발표했다. 두 회사를 제일모직 중심으로 합병하는 이유는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일가가 제일모직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반면,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삼성전자 및 다른 계열사의 주식을 상당히 보유하고 있기에 제일모직을 중심으로 삼성물산과 합병을 하면 자연스럽게 삼성그룹에 대한 삼성 일가의 지배력이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합병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가 약 16만원으로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그 당시 삼성전자의 주가가 135만원 정도였는데, 삼성전자의 액면가는 5,000원이고, 제일모직의 액면가는 100원이기에, 제일모직의 액면가를 5,000원으로 환산하면 현 주가가 800만원에 해당하며, 이는 삼성전자의 주식보다 약 6배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나처럼 기업의 가치에 대해서 문외한인 사람도 제일모직의 기업가치가 삼성전자보다 6배나 된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합병을 발표할 시점의 삼성물산 주가는 55,000원 정도로 그 당시 제일모직 주가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필자는 삼성물산의 주가가 적절한지를 분석할 수 있을만한 전문가가 아니며, 두 회사의 재무제표를 파악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자본금이 7,800억인 삼성물산을 자본금 135억인 제일모직이 1대 0.35의 비율로 합병한다는 것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합병을 공정한 절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처럼 제일모직의 주식이 삼성물산보다 높게 평가된 상태에서 합병을 결정한 것은 이재용 부회장과 그 일가가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극대화하려는 것으로, 이병철 회장 - 이건희 회장 -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삼대 세습을 공식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북한 정권의 삼대 세습을 비난하지만,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음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의 제일모직은 2014년 삼성 에버랜드에서 회사명이 바뀐 것인데, 에버랜드는 과거에 전환사채를 발행하여 이재용 부회장에게 편법 증여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번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과 이번 합병은 모두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알려진 삼성의 품격에 손상을 가져오는 결정이기에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약점을 파고들어온 세력이 바로 엘리엇이라는 헤지펀드(Hedge Fund)였다. ‘헤지’의 원래 의미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투자기법이지만, 요즘 말하는 헤지펀드란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국제적 투기자본이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지분을 약 7% 정도 확보한 후, 합병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번 합병은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통쾌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문제는 엘리엇이 정의 구현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남의 약점을 이용하여 돈을 갈취하는 합법적 해적과 같은 집단이다. 엘리엇은 아르헨티나의 국채를 헐값에 사들여 엄청난 이득을 취했고,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디폴트에 빠지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일하기 좋은 10대 기업’인 넷앱(Netapp)의 주식을 사들여 비용 절감과 주주의 이익을 주장하며 3년 동안 2천 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해 버린 일도 있었다. 이처럼 엘리엇은 자신들의 이익 실현을 위하여 국가를 망하게 하거나 일하기 좋은 회사의 직원을 대량으로 해고하는 등 피눈물도 없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결행하기에, 삼성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나을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삼성은 그나마 유용한 제품을 만들기나 하지만 엘리엇과 같은 헤지펀드는 생산자가 아니라 약탈자에 가깝다. 합법적인 것이 모두 바람직한 것은 아님을 고려할 때, 비록 법을 지키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 전체나 해당 당사자를 배려하지 않고 내 이익만을 탐하는 측면에서 보면, 이번 합병과 관련하여 삼성이나 엘리엇은 요즘 개그 프로의 유행어처럼 ‘도찐개찐’이기에 비록 삼성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엘리엇의 편을 들기는 쉽지 않다.
삼성물산은 주주들의 합병 찬성을 얻어내기 위해서 온 힘을 기울이는 모양이다. 국민연금이나 기관투자가들을 설득하는 것은 물론 1,000주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소액주주들도 일일이 찾아가서 합병 찬성 위임장을 받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치 선거 때만 국민을 위할 것처럼 굽실거리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회사의 영업을 위해서 동분서주(東奔西走) 해야 할 시간에 엉뚱한 곳에 힘을 쓰는 것 같아서 기가 막히기까지 하다.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 삼성이 우리나라 기업이기에 삼성이 원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기를 응원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국민연금이 엘리엇에도 상당 금액을 투자했다고 하니 엘리엇을 ‘적군’으로만 보기도 어렵다. 다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그룹 중 하나인 삼성의 현주소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IMF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렸지만 그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체질이 강화되었듯이, 이번 일을 계기로 삼성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국민들에게도 존경받고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는 회사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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