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각국 간의 문화적 교류도 활발해졌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여행의 빈도도 잦아졌으며, 그 결과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무척 높아졌다. ‘관광’이란 단순히 경치를 구경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고장의 빛을 본다(觀國之光),” 즉 문화를
체험한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에 <조선일보>가 보도한 내용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 신문 보도에 의하면, 지난 4월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앞에 회색 승복을 입고 밀짚모자를 쓴 한국 스님 40명의 모습이
보였다. 일행 가운데는 수덕사 방장인 설정 스님도 있었다. 이들은 절벽 수도원으로 유명한 메테오라 수도원, 에페소스의 초기 기독교 유적도
방문했고, 그리스 정교회의 80대 노수사와도 만났다. 이 여행은 조계종 교육원이 마련한 정식 연수 코스였으며, 그것을 기획한 사람은 교육국장인
진광 스님이었다.
그는 10여 년 동안에 세계 100여 개국을 배낭여행한 베테랑 여행가라고 한다. 그에게 세상은 또 다른 선방(禪房)이었다. 현지
종교시설을 찾을 땐, 그들의 예법을 따라 해보기도 했다. 그는 “신자들은 전 세계를 누비는 마당에 정작 스님들이 불교 성지순례라는 좁은 테두리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순례든 여행이든 결국 돌아오기 위한 것입니다. 종교란 결국 인간에 대한 서비스인데, 여러 종교를 겪어보면 길은
다 달라도 결국 목적지는 하나가 아닐까요. 많은 스님들이 그런 경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른 종교의 성지순례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신문의 김한수 기자에게 “앞으로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의 가톨릭 수도원과 이집트, 이스라엘의 그리스도교 성지순례도 기획하겠다”고
전한다.
종교적 수행의 관점에서 볼 때, 과연 “길은 다 달라도 결국 목적지가 하나”인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도 있듯이, 다른 종교에 대해서 알면 그만큼 그 종교를 좋아하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 자기 종교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석가는 네팔의 테라이지방 남서부에 있는 룸비니에서 태어났다. 먼 옛날, 이곳은 늘 푸른 나무인 ‘사라수(沙羅樹)’가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이었다고 한다. 마야부인은 만삭이 되어 친정으로 가던 중 웅장한 자연을 넋을 잃고 보다가, 선 채로 늘어진 가지를 잡고 진통 끝에 석가모니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룸비니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불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의 신자들, 특히 여러 종교의 성직자들도
무리지어 이곳을 순례하는 광경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