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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예레반 근교의 명소들

양선재 2014. 8. 12. 15:25

예레반 근교의 명소들

희망봉40 2014.08.11 23:45

http://blog.daum.net/snuljs/16501439 에서 복사한 글입니다.


이번에는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의 근교에 있는 명승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수도에도 볼거리가 많지만 근교에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비롯한 관광명소가 많습니다.

먼저 게그하르트 동굴사원을 찾아갑니다. 게그하르트 동굴사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독특한 문화재입니다.

게그하르트 동굴사원 가는 길은 위의 사진에 보듯이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계곡사이로 이어집니다.

이계곡의 이름은 아자트 계곡인데 바위산 속을 한참 달려가니 도로가 끝나는 곳에 게그하르트 사원의 모습이 보입니다.

 

동굴입구에서 기묘한 광경을 봅니다.산 닭을 도살하는 장면인데 삼계탕을 끓이려는 것은 아니고 사원에 희생물로 바치려는 것이랍니다.

게그하르트 동굴사원이 유명한 것은 이 사원의 절반이상이 뒤의 바위절벽속에 동굴을 파고 들어선 건물로 이루어져 있기때문입니다.

아치형으로 된 게그하르트 동굴사원 입구에서 본 사원의 모습입니다. 

사원내부의 제단입니다.

게그하르트 동굴사원의 정식명칭은 게그하르트 아방크인데 이것은 아르메니아 어로 창끝 사원이란 의미라고 합니다.

이 사원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은 12사도의 한 사람인 다데오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때에 예수님을 찌른 로마병사의 창끝을 이곳으로

가져왔기때문이라고 합니다.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이 그 창끝인데 지금은 예레반에 있는 에치미아진 대성당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동굴사원에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동굴사원 내부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원을 바위절벽을 손으로 파서 만든 것이라니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동굴속 예배당으로 가는 통로의 벽에는 아르메니아 십자가가 새겨져 있습니다.

동굴사원안에는 두 개의 예배당이 있는데 외부계단을 통하여 들어갈 수 있는 제2동굴예배당은 특히 신비스러운 곳입니다.

이 예배당의 한가운데에서 성가를 부르면 소리가 증폭되면서 마치 노래소리가 듣는 이의 주변을 맴도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침 그런 체험을 직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동굴사원을 관람하고 있는데 붉은 가운을 입은 5명의 합창단이 들어와서

아름다운 하모니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정말 천상의 노래처럼 들렸습니다.

이때 동굴사원안에 있던 관광객들 모두가 감격한 표정으로 그들의 노래를 감상하였지요.

 

게그하르트 교회의 앞마당에는 신비한 바위돌이 하나 있습니다.

1975년에 교회 뒤의 절벽에서 굴러떨어진 큰 바위인데 그 당시 교회마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스러운 힘이 작용했었기 때문이라고 교회에서는 이를 치우지 않고 그냥 놔두었는데

이것을 만지면 액운을 물리친다고 소문이 나서 지나는 사람들이 한번씩 바위를 만져보고 지납니다.

 

게그하르트 동굴사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르니(Garni)신전이 있습니다.

언덕위의 높은 단위에 24개의 이오니아식 기둥을 둘른 이 신전은 얼핏 보아도 기독교와는 무관한 신전인듯이 보입니다.

일찌기 301년에 기독교를 공인한 아르메니아에서는 기독교가 도입되기 이전의 이교도 신전들은 전부 파괴되었거나 기독교 사원으로 바뀌었는데그리스 로마 양식의 이 신전은 1세기에 지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원형그대로 존속된 것입니다.

이 신전은 태양신을 위해 바친 것으로 추정되는데 발굴조사결과 1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발굴된 암석등에 새겨진 명문을 판독한 결과 이 신전은 로마제국 초기인 1세기에 건축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당시 아르메니아 왕인 티리다테스 1세가 로마를 방문하였는데 네로황제의 눈에 들어 황제가 하사한 돈과 기술자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가르니 신전은 1679년에 지진으로 파괴된 뒤에 폐허로 묻혀있다가 1969~1974년에 발굴 복원되었습니다.

 

게그하르트 동굴사원과 가르니 신전을 구경한 우리는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를 안내하는 박사장은 될 수 있는대로 우리에게 특별한 체험을 하도록 애를 쓰는데 이번에는 전통방식의 빵과 바베큐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아르메니아의 전통빵인 "라바쉬"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즉석에서 갓구어낸  라바쉬를 맛도 보게 해줍니다.

라바쉬를 만들기 위해서는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밀어서 아주 얇게 만듭니다.

거의 종이처럼 얇게 만든 밀가루반죽을 달구어진 화덕의 안벽에 붙입니다. 얇은 반죽을 뜨거운 화덕의 벽에 붙이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얇은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붙이는 것도 힘들지만 빵이 타지 않게  시간 맞추어 꺼내는 것도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갖 구어낸 빵을 관광객들에게 나누어 주고 먹어보라고 합니다. 참 맛있습니다.

아르메니아 인들은 이빵을 주식으로 끼니때마다 먹는다고 합니다.

빵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 이번에는 역시 뜨겁게 달구어진 화로속에서 바베큐를 굽는 것을 보여줍니다.

4층으로 된 석쇠에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그리고 감자를 얹어 놓고 화로속에 집어 넣습니다.

여기서도 타지 않게 적당한 시간에 바베큐를 꺼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화로에서 맛있게 구어진 바베큐에 야채를 얹어 라바쉬 빵과 함께 손님에게 제공합니다.

 

가르니 신전이 있는 언덕아래에 가르니 계곡이 있는데 그 계곡에는 이 세상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주상절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처럼 신비한 모습의 주상절리를 아르메니아 인들은 "돌들의 교향악"(Symphony of stones)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유네스코에서는 이 가르니 계곡과 가르니 신전이 있는 지역 일대를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예레반 교외에 코비랍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 역시 종교적으로 큰 의미가 있어 아르메니아인들의 순례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아라랏 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코비랍 교회 뒤에 아라랏 산이 구름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날이 맑아 아라랏 산의 정상이 보이면 코비랍교회와 어우러져 멋진 사진이 될 터인데 아쉽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코비랍(Khor Virap)교회입니다.

 

조지아에서는 포도나무 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선교를 한 성녀 니노가 유명하지만 아르메니아에서는 성 그레고리가 유명합니다.

 

성자 그레고리는 257년에 사산조 페르시아의 귀족인 아나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나크는 페르시아의 왕 아르다시르 1세의 명으로 아르메니아의 왕국의 코스로브 2세 왕과 왕비를 암살하였습니다.

아나크와 그의 가족은 아르메니아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하였지만  아들인 그레고리는 하인들의 도움으로 터키로 피신하였죠.

피신한 카파도키아에서 기독교 세례를 받고 독실한 신자가 된 그레고리는 자신의 아버지가 지은 죄를 씻고 조국 아르메니아에 도움이 되고자

아르메니아로 돌아와 암살당한 왕의 아들인 티리다테스 3세에게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설교를 하였다지요.

그레고리가 선대 왕을 암살한 범인의 아들임을 알게 된 티리다테스 3세는 그레고리를 이곳 코비랍의 지하동굴에 감금하고

온갖 방법으로 그를 학대하는데 독사와 전갈을 집어 넣거나 끓는 납을 붓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무려 13년간이나 감금하였으나 그레고리는 독실한 기독교 신도들이 넣어주는 빵과 물만으로 목숨을 유지하였습니다.

왕은 그레고리의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왕이 별안간 몹쓸 병에 걸려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그의 꿈에 그레고리가 아직 살아 있으며 그레고리만이 왕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왕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사람을 코비랍에 보내 확인하니 그레고리가 살아 있는지라 그를 왕궁으로 데려왔고

그레고리는 신령한 힘으로 왕의 병을 낮게 해 주었습니다.

이에 왕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레고리로부터 세례를 받고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였습니다.

이때가 301년으로 이로써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된 계기였습니다.

이러니 그레고리가 아르메니아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 되고  그가 갇혀 있던 코비랍 교회가 성지가 되는 것이지요.

코비랍교회의 제단

 

 

성자 그레고리가 갇혀 있던 굴속에 일반인들도 들어가 볼 수 있는데

성지인만큼 들어가려는 사람은 많으나 통로가 한 사람씩만 들어 갈 수 있기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