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시아/코커서스 3국

[스크랩]바다같은 세반호수-아르메니아 3

양선재 2014. 7. 27. 21:38

바다같은 세반호수-아르메니아 3


희망봉40 2014.07.26 07:00

타라의 소녀상

이제반 리조트에서 점심식사까지 한 우리는 다음 행선지 세반 호수(Sevan Lake)를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가는 버스안에서 현지가이드인 씨라는 우리가 지나는 지역의 특성이며 주민들의 특징같은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특별한 내용은 일찌기 그리스 사람들이 아르메니아의 풍부한 구리광산 채굴권을 얻었고, 구리를 채굴하고 제련하는 그리스인들이

이 지역에 많이 이주하여 정착하였는데 그들은 이곳에 그리스 양식의 건물을 지어 살았다고 합니다.

 

위의 소녀상은 타라 소녀상이라고 부르는데 이 소녀상을 지나면 머지 않아 세반호수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타라 소녀의 동상이 어째서 여기에 서 있는가?

유사한 전설이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지만 젊은 소년과 소녀의 비운의 사랑이 그 사연입니다.

씨라가 설명해 주는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반 호숫가에 타라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매일 호수에 나와 수영을 하는 소년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소녀의 아버지가 둘 사이를 눈치채고 못 만나게 하자 이들은 아버지 몰래 밤에 만났다고 합니다.

어두워서 길을 찾지 못할 것 같으니까 소녀가 매일 밤 횃불을 들고 나가서 소년을 인도하여 둘은 데이트를 할 수 있었는데

이를 알게 된 아버지가 소녀를 집에 가두고 나가지 못하게 하였답니다.

소년은 횃불이 켜져 있음직한 곳을 찾아다니며 헤엄을 치다가 길을 잃었고 밤이 지나자 기진맥진하여 그만 사망하였다지요.

나중에 소년이 사망한 것을 알게 된 타라 소녀도 따라서 죽었답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후대 사람들이 세반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횃불을 든 타라 소녀의 동상을 세워 준 것이라고 합니다.

타라의 동상이 있는 바로 아래에는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여서 버스를 세우기가 적당하지 않은데도 씨라가 운전기사에게 부탁하여

1분만 시간을 준다는 조건으로 버스를 길가에 세워주어서 우리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과연 타라의 동상을 지나자 넓은 세반 호수가 나타났습니다.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내륙국가인 아르메니아에서는 세반 호수를 바다라고 부른답니다.

세반호수는 아르메니아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호수로서 아르메니아는 물론 코커서스 전체에서도 가장 큰 호수입니다.

이 호수는 해발 1,900m,높이에 위치하여 세계에서 손꼽히는 높은 호수라고 합니다.

전체 호수면적은 약 4,300㎢로 서울특별시의 7배에 해당하는 넓은 호수입니다.

 

이 호수는 스탈린때문에 홍역을 치른 일이 있습니다.

스탈린 시절 소련정부는 세반호수 밑에 대형배수관을 묻어 호수의 물을 다른 연방국가로 빼돌려 수력발전과 관개용으로 쓰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호수의 수위를 45m정도 낮추고 물이 줄어 생기는 땅에는 호도나무를 심어 줄어드는 물고기 어획을 대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39에 공사가 착공되었으나 세계제2차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49에 완공되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의 결과로 세반호수의 수위는 매년 1m씩 낮아져서 당초의 높이1,916m보다 19m나 낮아졌습니다.

호수의 수위가 낮아지자 이전에 섬이었던 곳이 육지와 연결된 반도가 되는가 하면 민물고기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그밖의 여러가지 환경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스탈린 프로젝트를 모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스탈린이 1953년에 사망하자 1956년에 세반 호수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 위원회에서 검토한 결과

스탈린이 추진하던 계획을 당장 중단하고 세반호수의 수위를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계획을 시행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이미 완공되어 발전을 시작한 수력발전소는 화력발전소로 대체하였고 다른 강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한 도수로 공사가 시행되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 호수의 수위가 높아져서 드디어 2012년 3월 아르메니아 정부는 세반 호의 수위가 1,900m를 넘어섰다고 발표했습니다.

곧 세반호수의 상징인 세반 반크 교회가 모습을 보입니다.

세반호숫가 세반반크 수도원 아래에 있는 레스토랑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블라디미르 박 사장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리자 미리 와 있던 박사장이 반갑게 맞아 줍니다. 3일만에 만나는데 그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더우기 나는 인솔자 겸 통역의 임무에서 벗어나게 되어 더욱 그가 반가웠습니다.

우선 세반반크 수도원부터 구경합니다.이곳은 예전에는 섬이었는데 스탈린 프로젝트로 호수의 수위가 낮아져서 육지와 연결된 것입니다.

수도원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기념품파는 사람들과 그림을 파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세반반크 수도원은 아쇼트 1세 왕 시절인 974년에 공주인 매리암이 전쟁에 나간 그녀의 남편을 위하여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 후 이 수도원은 아르메니아가 외적의 침입을 받을 때마다 방어와 저항의 근거지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1375년에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나 페르시아가 처들어 왔을때에도 그랬고 오토만제국이 침략해 왔을 때도 그랬답니다.

원래는 3개의 수도원을 지었는데 하나는 폐허가 되었고 이 두 개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들 수도원은 공산당치하에서 많이 훼손되어서 1956년부터 2년에 걸쳐 복원과 보수공사가 시행되었으나

기본적인 건축개요는 10세기의 건축물의 것이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수도원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이 수도원은 아르메니아 국교인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사제가 상주하고 있지는 않다고 합니다.

벽에 12사도의 그림이 있습니다. 특이하지만 아르메니아 교회를 사도교회라고 하니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도 아르메니아 교회에 특별한 카치카 십자가가 교회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맨위의 하느님 나라 ,가운데의 예수님, 그리고 맨 아래에 인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은 같은데 그림내용이 이제까지 본 것과는 다릅니다.

 

 

밖으로 나와서 폐허가 된 또하나의 수도원 흔적을 살펴 봅니다.워낙 철저히 망가져서 복원은 힘들 것 같습니다.

세반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수도원 언덕에는 야생화가 많이 피어 있습니다. 우리 일행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고 바쁩니다.

그 사이에 나도 우리 그룹의 연장자이신 김선생님과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세반반크 사진-이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  그림엽서에도 자주 나오는 모습입니다.

 

수도원에서 내려 와 이번에는 세반호수에서 유람선을 탈 차례입니다. 예약제로 운행되는 유람선에 우리는 3시 50분에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태우러 오는 유람선-크지 않은 배에는 선장실 앞과 갑판 뒷쪽에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유람선 승선 직전에-오늘은 인물사진을 많이 찍는 것 같습니다.

유람선 선착장을 벗어나면서

배위에서 세반반크 수도원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세반반크 수도원이 있는 언덕 아래에 있는 이 멋진 건물은 아르메니아 대통령의 별장이라고 합니다.

이 배의 선장은 관광객들에게 친절해서 아내에게 자동차의 핸들같은 조타를 맡겼습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우리는 무면허 무경험인 아내가 운항하는 배를 탄 것입니다.

갑판에서 현지가이드 씨라 그리고 우리팀의 명총무님과 함께.

 

선착장에서 30분간 호수로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것이니 한 시간동안 유람선을 타는 것인데 일행들과 웃고 이야기하는 동안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날씨가 약간 쌀쌀했지만 준비한 패딩점퍼를 입어서 괜찮았고 아주 재미있는 유람선 나들이였습니다.

우리가 유람선에서 내려 호텔로 가기 위하여 주차장에 도착하였는데  관광버스가 한 무리의 관광객을 내려 놓습니다..

이들은 이란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원리주의 이슬람이 지배하는 나라 이란에서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에 관광을 온 것입니다.

박사장님의 이야기에 의하면 자기나라에서 워낙 원리주의적인 이슬람 율법에 지쳐서인가

이란 사람들이 외국에 나오면 다소 일탈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외국에 나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여자들은 우선 히잡을 벗어버리고 남자들은 맥주마시고 떠드는 일이랍니다.

그래서 이란 사람들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