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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아르메니아-1(아르메니아의 세계문화유산인 수도원과 미그 비행기)

양선재 2014. 7. 23. 23:20

아르메니아-1(아르메니아의 세계문화유산인 수도원과 미그 비행기)

희망봉40 2014.07.21 08:00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의 국경

(뒷쪽에 보이는 것이 조지아의 국경초소입니다.양국의 국경은 역시 강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출국수속을 마친 우리 일행은 짐을 끌고 걸어서 아르메니아 국경으로 갑니다.

유일한 육로접경국가인 북한에 육로로 여행할 수 없기에 한국인들에게 나라와 나라사이를 걸어서 통과한다는 것은 다소 생경한 경험입니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비교적 사이가 좋은 이웃나라이기에 두 나라의 국경을 통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아르메니아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를 받아야 하지만 우리는 이미 비자를 받았기에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컴퓨터의 문제인지 두 나라의 출입국절차의 진행속도는 다소 느린 편이었습니다.

인천공항의 출입국 절차가 얼마나 선진화되어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아르메니아의 국경

두 나라의 국경에는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습니다. 환전소도 없고 면세점도 없습니다. 최소한의 출입국수속만을 담당하는 곳이었습니다.

조지아에서의 마지막 날과 아르메니아에 입국한 후 이틀동안은 우리를 보살펴 주던 블라디미르 박 사장이 없습니다.

다른 급한 용무때문에 우리와 동행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부득이 내가 인솔자가 되어야 하였습니다.

일행들이 무사히 조지아의 출국수속과 아르메니아 입국수속을 마친 것을 확인하고 나오니 현지가이드가 다가왔습니다.

"씨라"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가이드였는데 눈이 크고 얼굴이 예쁜 아가씨였습니다.

 

씨라와 일정을 협의하였는데 우선 국경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있는 하그파트 수도원을 관람하고

알라베르디에 가서 점심을 먹은 다음에 사나힌 수도원을 관람하는 것으로 협의하였습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하그파트 수도원과 사나힌 수도원이라 그렇게 하는 것이 무난하다는 것입니다.

국경에서 하그파트 수도원까지는 1시간이면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국경을 떠나는 버스안에서 씨라는 자신을 소개하고 아르메니아라는 나라의 개요를 설명하였습니다.

하그파트 수도원에 도착하였습니다. 하그파트 수도원은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언덕길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하였습니다.

10세기에 지어진 하그파트(Haghpat) 수도원은 아르메니아 중세의 대표적인 교회건축물로서 그 가치가 높아

우리가 오후에 방문할 사나힌(Sanahin)수도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투박하지만 장중한 분위기를 풍기는 교회내부의 모습입니다.

아르메니아는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313년보다도 10여년이나 빠른 301년에 기독교를 공인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이를 국교로 삼은 나라가 아르메니아라고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아르메니아의 기독교는 아르메니아 사도 정교회(Apostle Orthodox Church)라고 불립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두 사람인 바돌로메와 다대오가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파했다고 알려졌기때문입니다.

 

 

아르메니아의 현지가이드인 씨라(가운데 파란 옷의 여자)와 함께.

 

우리를 안내하면서 씨라는 자주 속상해 하였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위대한 문화유산에 대하여 한가지라도 더 설명을 해주고 싶은데

우리 일행들은 씨라의 설명보다는 사진찍기에 바빠서 "설명을 들은 다음에 사진을 찍으라"는 씨라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씨라가  모이라고 할 때에 그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기때문이지요. 허지만 우리 일행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설명이야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면 될 일이고 우선은 자신의 모습이 들어 있는 인증샷부터 찍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행뒤에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더라는 것이 이들의 굳은 신념이니까요.

 

하그파트 수도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카치카(Khachkar)라고 불리는 아르메니아  십자가입니다.

아르메니아에서는 십자가는 더 이상 처형의 도구만은 아닙니다.

아르메니아 십자가인 카치카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하여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위에 있는 것은 하그파트 수도원의 대표적인 십자가인데 이 십자가는 3단계로 구분됩니다.

맨 윗부분은 하느님의 공간인 천국을 상징하고 그 아래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표현하고 있고

그 아래부분은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구 또는 현세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하늘나라와 인간세상을 연결한 것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하그파트 수도원에는 여기저기에 카치카가 흩어져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십자가인 카치카는 조지아에서 보던 포도나무 십자가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10세기에 지어진(970년 착공, 991년 완공) 것으로는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된 하그파트 수도원입니다.

하그파트 수도원은 문화적 가치가 높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현재의 관리상태는 위험할 정도로 허술합니다.

지붕에 풀이 자랄 정도로 관리되고 있고 수도원 내부도 많이 훼손되고 있음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런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도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동안 사제나 관리인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하그파트 수도원에서 바라보는 데베드 강의 계곡입니다. 산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건물들이 모두 낡아보입니다.

어려운 아르메니아의 경제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우리는 하그파트 수도원을 돌아본 뒤에 계곡 아래에 있는 알라베르디의 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아르메니아에 와서 첫번째 식사였습니다. 호박과 감자로 만든 스프와 구운 감자 그리고 야채를 곁들인 케밥이었는데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식당에서 점심먹을 때에 에피소드가 한가지 있었지요.

보통 식당에 가면 현지가이드와 운전기사는 딴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우리 일행 16명은 함께 식사를 하는데

이날은 우리의 테이블 세팅에 한 자리가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씨라에게 이야기하니 인솔자는 가이드와 함께 식사하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인솔자인 나는 자기들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도록 세팅이 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허허 이것 완전히 여행가이드가 되어버렸네하고 웃으면서 그들과 식사를 함께 하였습니다.

 

점심 후에 우리는 또 다른 세계문화유산인 사나힌(Sanahin)수도원을 보러 갔습니다.

사나힌 수도원 역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입니다.

사나힌(Sanahin)은 아르메니아 어로 "더 오래된"이라는 뜻이랍니다. 맞은 편에 있는 하그파트 수도원보다 오래 된 것이라는 의미랍니다. 

하그파트 수도원은 970년에 착공되었고 사나힌은 966년에 착공하였으니 4년 먼저 지은 것이라 그리 작명했는가 봅니다.

두 수도원은 모두 아르메니아의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바그라투니 왕조의 아쇼트(Ashot) 3세 왕 때에 지어진 것들입니다.

지진과 전쟁으로 파괴되고 세월의 흐름에 침식되기도 하였지만 현재까지도 중세시대의 건축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건물들입니다.

10세기에 이런 아치를 세우고 그 위에 육중한 건물을 올렸다는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사나힌에서 보는 또 다른 문양의 카치카입니다.

사나힌 수도원은  그 안에 교회뿐 아니라 도서관,학교같은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기관이 있어 문화의 중심역할도 하였다고 합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부분은 강의실입니다. 학생들이 걸터앉아서 강의를 듣던 장소라고 합니다.

 

 

 

사나힌 수도원은 10세기에 건립된 이후 13세기 몽골의 침입을 받기 전까지 여러 왕과 왕비들이 지속적으로 건물을 추가로 지었기에

위의 세 컷트의 사진에서 보이는 문 한가지만 보아도 다양한 건축기술이 적용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나힌의 중심인 원형 돔-원래는 이보다 더 크고 웅장한 돔으로 되어 있었으나 파괴되고 이처럼 작은 돔으로 바뀐 것이라고 합니다.

사나힌 수도원에는 유구한 아르메니아의 교회 역사를 이끌던 많은 대주교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폐허처럼 있는 묘비석들이 그 대주교들의 무덤입니다.

 

하그파트와 사나힌 수도원을 돌아보면서 의아한 점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 점입니다.

현지가이드 씨라에게 물으니 아르메니아에서는 교회시설에 대하여는 그것이 교회이던 수도원이던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기도드리러 오는 장소에서 입장료를 받는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래도 입장료를 받아서 쇠퇴해가는 건물을 유지보수하는데 써야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인 이들 수도원을 보러 온 관광객이 돈을 쓸 곳이라고는 이런 기념품가게외에는 없었습니다.

사나힌 수도원 아래에 이런 표지가 있습니다.미코얀 박물관 가는 길입니다.

 

미코얀(Mikoyan)은 아르메니아가 배출한 유명한 형제의 이름입니다.

그 중의 형인 아나스타스 미코얀(Anastas Mikoyan)은 소련공산당의 간부로 소련의 최고회의 의장의 지위까지 올랐던 사람이고

동생인  아르템 미코얀(Artem Mikoyan)은 유명한 항공기설계자로 소련공군의 주력기인 미그(MIG)비행기를 설계한 사람입니다.

이들 형제가 태어난 마을이 바로 사나힌 수도원이 있는 사나힌 마을이죠.

미그 21전투기 한대가 격납고 모양의 지붕아래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된 미그21기

미그 전투기는 1950년대의 미그 15부터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어 그의 생전에 미그25까지 생산되었고

미그 기들은 항상 소련 공군의 주력전투기로 활약하였습니다.

한국전쟁 중인 1950년초에 등장한 미그 15기는 압록강위에서 미국공군기와 공중전을 벌여 막상막하의 전투를 하였답니다.

아니 오히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을 압도하던 미공군의 항공기보다 더 우수한 전투능력으로 미군을 괴롭혔습니다.

 

정체를 모르는 미그 15기의 뛰어난 공중전 능력에 깜짝 놀란 미국은 미그15기를 몰고 귀순하는 사람에게는 10만달러의 보상금과

미국시민권을 보장한다고 선포하였는데 1953년 9월 21일에 북한공군의 노금석 대위가 미그 15기를 몰고 김포공항에 착륙하였습니다.

그는 미국의 보상약속은 아는 바 없이 북한공산당에 실망하여 자진해서 월남귀순한 것인데

미국은 약속대로 그에게 미화 10만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미국시민권도 주었습니다.

그는 미국에 정착하여 대학에서 기계전자공학을 공부하고 미국 방산업체에 근무하다가 지금은 은퇴하여 플로리다 주에 살고 있습니다.

 

미코얀이 설계한 항공기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아르메니아의 시골마을인 사나힌에서 출생하여 항공기 설계자로 전세계에 이름을 날린 미코얀의 동상은 미그 21기 앞에 있습니다.

미그기 설계자인 동생 미코얀보다 더 높이 출세한 사람은 형인 아나스타스 미코얀입니다. 그의 동상은 미그21기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형 미코얀은 일찌기 공산주의에 심취하여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후 착실히 지위를 높여가며 출세하였답니다.

스탈린 치하에서는 독일군과 싸우는 붉은 군대의 보급업무를 담당하여 실력을 인정받아 대외무역상의 지위에 올랐고

스탈린 사후에는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에 동조함으로써 소련의 제1부수상이 되었고

 그 뒤로는 소련공산당 최고회의 간부회의 의장에 올랐다가 1978년 82세에 사망하였습니다.

 

형인 아나스타스 미코얀의 동상옆에 미코얀 형제의 박물관이 있는 것 같아서 현지가이드인 씨라에게 박물관도 보고 가면 안되냐고 하니

박물관을 보고 가면 점심을 예약한 시간보다 많이 늦을 것 같고 박물관에는 두 사람들의 사진과 옷 훈장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별로 볼 만한 것은 없으니 그냥 가자고 합니다. 아쉽지만 그냥 가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