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定理)와 조리(條理)
금년[2020]은 우리에게 복을 흠뻑 안겨주는 하얀 쥐라고 하는 경자년(庚子年) 쥐띠의 해이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쥐에 대한 이미지[image]는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한때 쥐가 너무 창궐하여 학생들이 쥐꼬리를 학교에 제출한 적도 있었다. 최근 중국에서 쥐로 인해 옮기는 페스트 환자가 생겨 쥐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쥐는 우리에게 나쁜 것으로 간주되어 타인을 비하하는 데 쓰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쥐는 다산(多産)과 부귀를 상징하며, 더욱이 하얀 쥐는 인간 대신 생체실험에 쓰이는 귀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서양인의 카툰에서 어리석은 고양이를 약삭빠른 쥐가 교묘히 따돌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꾀의 화신이라 할 정도로 쥐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미키 마우스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이것은 쥐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어떠한 고정된 생각의 틀을 허용치 않는 철학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어떠한 관념에도 얽매이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이데올로기[이념]에 사로잡히면 사실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념에 복종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조선왕조 오백 년 동안 하나의 이념 아래 살아왔다. 조선은 불교국가인 고려를 멸망시키고 탄생한 나라이다. 따라서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써서 유교, 특히 신유교인 성리학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신왕조의 이념을 만든 정도전은 서울 사대문을 설계하고 이름도 지었을 뿐 아니라, 국가 제도[조선경국전, 경제문감] 마련에도 힘썼다. 특히 중요한 것은 불교를 비판하기 위하여 『불씨잡변』을 쓰기도 하고, 불교와 도교를 성리학의 한 단계 낮은 사상으로 격하시켜 이 가르침을 이단으로 배척하였다. 오로지 주자학만을 정통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한 사고는 새롭고 독창적인 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양명학이 들어올 때 불교와 같은 심학이라 하여 이단으로 배척하였고, 서학이 도입될 때 이를 사특한 학문[邪學]이라고 금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전하는 사람들을 박해하여 수많은 순교자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말기에는 유학의 정통을 지키기 위하여 서양문물을 사악한 것으로 규정하여 위정척사(爲正斥邪)운동을 벌여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뒷받침했다. 이것은 모두 조선 초기에 만든 틀을 500년간 지킨, 굳어진 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 주자학은 조선왕조 이념의 시녀로 전락한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 학문 자체가 고정불변의 정리(定理)를 역설한 데서 생긴 것이다. 주자가 본 인간관계는 상하(上下), 존비(尊卑), 장유(長幼), 친소(親疎) 등의 신분 역할이 있는데, 이렇게 규범화한 예(禮)를 정리라고 했다. 현실에서 신분은 모두 정리에 의하여 보장되어야 하고, 이에 어긋나면 가차 없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 사회에서 예법을 강조함으로 인하여 '예송논쟁'이 일어난 것을 보면 그 경직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양명학은 고정된 이치[定理]를 부정하고 마음의 양지 판단에 따라서 그 장소, 그 시대에 알맞은 합리적인 이치인 조리(條理)를 권하였다. 따라서 다른 가르침에 대하여 개방적이었다. 불교와 도교에 대하여 삼교합일을 주장하였는가 하면, 양명학자 박은식은 기독교까지 수용하여 유학을 새롭게 만들고자 하였다. 전통 유학의 닫힌 도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에 알맞은 열린 도덕으로 나아간 것이다.
우리가 어떤 고정된 원리[定理]에 사로잡히면 원칙주의자가 되고, 이데올로기 신봉자가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남이 만들어 놓은 이념[주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며 상대방을 비난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내편 네편을 따지는 것도 바로 오백 년 조선시대의 고정된 사고를 버리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는 양지[나침판]에 따라서 열려 있는 합리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절실히 요청된다. 경자년은 기존의 낡은 고정관념을 불식하고 새로운 생각이 더욱더 불어나는 역동적이며 성숙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보다 건강하고 하는 일이 모두 잘 되기[萬事亨通]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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