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한몸살이/1. 공지훈

신도의 공동생활. 본회퍼 지음. 정지련 손규태 옮김.대한기독교서회. 2012. 초판3쇄.

양선재 2018. 9. 23. 17:21

신도의 공동생활 - 관념적 이해에서 삶의 수행으로

[공동체]

교회 공동체는 책임 있는 사람들의 사려깊은 동역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은 이 문제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공동체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전을 중심으로 모일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다른 그리스도인이 신체적으로 함께 있다는 것은 신자들에게 비할 수 없는 기쁨과 힘의 원천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활동만이 유일하게 공동체 지체 사이에서 역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이에 세워 놓으신 것 이상을 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 형제의 사귐을 원치 않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 형제의 사귐은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실이며, 심리적 현실이 아니라 영적 현실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모든 소망의 형상들은 공동체를 훼방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깨져야 한다. 그래야만 참된 공동체가 살아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고 받아들이는 자로서 공동체 안에 들어가야 한다. 심리적 정신적 공동체는 경건한 영혼들의 공동체일 뿐이지만, 영적 공동체는 그리스도에 의해 부름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형제끼리 서로 섬기는 밝은 사랑, 즉 아가페가 살아 숨쉰다. 영적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며, 오직 그분만을 섬긴다. 그리고 타자를 직접 만날 수 없음을 안다. 그리스도가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서 있으므로 나는 다른 사람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갈망해서는 안된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형제를 말씀 아래서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 영적 사랑은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 사이에 설정된 한계를 존중한다.

그리스도교적 공동체-말씀 아래서 이뤄지는 공동 생활-의 생존은 자신을 그 어떤 운동이나 교단, 또는 그 어던 단체나 경건의 집단으로 이해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그리스도교적 교회의 한 부분으로 이해할 때에만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다. 정신 수준이나 영적 상태에 따라 구성원들을 선택하게 되면 인간의 정신적 요소가 다시 숨어 들어와 그 공동체에서 영적 힘과 영향력을 빼앗아가며, 결국에는 그 공동체를 분파주의에 빠뜨린다.

[함께하는 날]

이른 아침 예배(공동기도회) : 침묵, 시편 기도, 찬송, 길고 연혹적인 성서 구절 읽기(교독), 감사 찬송, 공동 기도 후 대표 기도 혹은 주기도문

아침 식탁 교제

일하는 시간 : 기도는 일을 촉진시키고 긍정하며 일에 진지함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점심 시간 : 짧은 휴식

저녁 식탁 교제

저녁 기도회 : 공동의 중보적 기도, 용서와 치유, 화해

[홀로 있는 날]

명상 시간 : 침묵하며 선별된 짧은 성구 묵상(가능한 한 주간 같은 성구에 마음을 집중하여 말씀을 기다리고 받아들임), 말씀에 토대한 기도, 공동체 지체를 위한 중보적 기도

[섬김]

형제에 대한 은밀한 말을 금지

모든 개인이 자신의 섬김을 극대화하도록 해야 한다. 할 일 없는 지체가 생기면 안됨.

내 죄가 가장 무겁다는 겸손으로 형제 섬기기 : 경청, 기꺼이 돕기, 남의 짐을 짊어지기

*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짐을 체험하게 되는 십자가 공동체다.

용서의 섬김은 ‘말없이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가운데 나타난다.

진정한 영적 귄위는 듣는 섬김, 돕는 섬김, 다른 사람의 짐을 지는 섬김, 그리고 선포의 섬김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만 존재한다. 공동체는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 예수와 형제들을 참으로 섬기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고해와 성만찬]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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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의 공동생활: 함께해요, 동지들의 한몸살이!|함께 배우고 익힘

주은 | 조회 16 |추천 0 |2018.09.25. 16:22 http://cafe.daum.net/welife111/LFeU/1578 


(늦게 올려 죄송합니다..)

책 읽으며 한몸살이 하며 들었던 말들과 꼭 같은 말들이 많아 놀라기도 하고, 그만큼 많이 공감하며 보았습니다.

하나 하나 곱씹어보고 싶은 말들이 많았으나, 몇 가지 마음에 남는 구절 혹은 

정리해보고 싶었던 주제들에 대해 들었던 생각 나누는 방식으로 느낀점을 썼습니다.


▣ (그리스도인에게) 형제자매와의 사귐이 필요한 까닭: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다른 그리스도인이 필요합니다

자기의 마음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형제의 말씀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보다 약합니다

자기의 마음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불확실하나, 형제의 말씀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확실합니다(26).

 

→ 그리스도인(예수님 따라 살려는 사람)들은 스스로는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목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없기 때문에

곁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으며 그의 말을 전해줄 수 있는 형제자매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그 형제자매가 나보다 하나님 말씀에 깨어있는 다거나 가깝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 곁에 형제를 둠으로써 혼자서도 어떠한 진리에 닿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지거나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교만해지지 않게 하기위해 자신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만 않으시고, 지체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


▣ 내 힘 아닌 하나님 힘으로 이뤄지는 참된 사귐

그리스도인의 형제애는 우리 실현해야 하는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룩하신 현실로서 우리는 그 현실을 받을 수 있을 따름입니다(37).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문장이지만, 머리로는 알아도 가끔씩 이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내 애씀으로 지체와 가까워진 것처럼 생각하거나, 혹은 내 힘으로 

저 지체와 가까워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혼자서 아등바등한다

그리스도인의 사귐, 형제애가 하나님이 이루신 현실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내 힘으로 관계를 소유하려하고, 소유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며, 하늘 뜻 잊고 교만해질 수 있다는 것 바로 새겨야겠다.



▣ 사람의 자연적 사랑과 영적 사랑이 다른 점

사람의 사랑이 갈망하는 것은 상대방이요, 그와의 사귐이요, 그에게서 돌아오는 사랑일 뿐, 섬기지는 않습니다

그 사랑은 남을 섬기는 것같이 보이는 때에도 오히려 자기의 욕구를 채우려고 합니다(41).

 

 너무나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었다. 사람의 사랑은 겉으로 보아선 서로에게 아주 헌신적이며

서로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어떤 점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사랑과 다른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사랑은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사랑과 다르게  

남을 섬기는 것 같아 보일 때에도 오히려 자기 욕구를 채우려 한다.

지체들과 깊이 있게 만나가려고 할 때, 그 만남으로 내 욕구를 채우려는 마음이 틈타지 않도록 나를 잘 살펴야겠다

사람의 사랑과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사랑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 기억하며 깨어있고 싶다.


▣ 홀로와 함께 

홀로 있을 수 없는 사람은 사귐 앞에서 마음의 고삐를 잡으라(98).

사귐 안에 서 있지 않는 사람은 고독 앞에서 마음의 고삐를 잡으라(99).


홀로 있음 없이 사귐을 바라는 사람은 공허한 말과 감정에 빠집니다

사귐없이 홀로 있음을 구하는 사람은 허영심이라는 심연에 빠지고 자신에게 현혹되어 

절망의 심연에 떨어져 죽고 마는 것입니다(99).

 

홀로 영성과 더불어 영성 모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어 익숙하게 느껴지는데

왜 그런걸까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홀로 있음이 없이 사귐만 바라면

즉 홀로 고요히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고 묵상하고 수련하는 시간 없이 사귐만 바라면 

공허한 말과 감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홀로 영성이 중요하며

반대로 사귐 없이 홀로 있기만 바라는 사람은 형제자매를 통한 하나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어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 생각하며 자기에게 현혹되고, 허영심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더불어 영성 또한 중요한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내 경험으로도 홀로 고요히 수련하고

마음 닦는 시간을 소홀히 할 때, 더 사귐에 집착하게 되고, 헛말들을 내뱉게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홀로 있으면서도 사귐을 깨뜨릴 수도 있고 흠집을 낼 수도 있고, 

반면에 사귐을 강화할 수도 있고, 거룩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114).

 

홀로 있으면서도 사귐을 깨뜨릴 수 있고, 사귐을 풍성하고 거룩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 또한 공감이 되었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말이 성립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서로를 지체로 삼고 

한몸 이뤄 살아가는 끈끈한 관계망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 언젠가는 사건으로 

혹은 그 사람의 눈빛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내가 홀로 있을 때에 어떤 마음자세로 

그 시간을 보내느냐가 사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홀로 있는 시간에도 마음을 지키고, 함께 할 때와 같이 일관된 선택과 결로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 죄고백과 교만

모든 죄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위해 있으려고 합니다.  

.. 죄의 고백은 교만을 찔러 위축시키고 .. 땅에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형제 앞에 죄인으로 선다는 것은 .. 견디기 어려운 치욕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 옛 사람은 형제의 눈앞에서 죽는 것입니다(146).


지체들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책에서처럼 나에게 죄를 고백하고 제멋대로 나에게 그 죄를 용서 받고 말려고 할 때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나는 지체들 앞에서 낮아질 계기도 없이 교만한 채로 살게 될 것이다

지체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내가 왜 그것을 부끄러워하는가하고

가만히 그 부끄러움 끝바닥을 살펴보면 그곳에는 이러이러한 나의 좋은 모습들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하는 교만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겠다.

 

▣ 죄인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 하지만!


어쩌면 항상 이러이러한 좋은 사람(죄인이 아닌)이고 싶은 탐심은 

그리스도인으로써 나를 죄인이라고 하는 고백과 어긋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쓴이는 힘주어 말한다. 죄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리스도인들은 신자로서 경건한 사람으로서 서로 사귀고는 있지만, 속인·죄인으로써 서로 사귀지 못할 때

함께 있으면서도 외톨이가 될 수 있다고(141).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죄인으로 서로 사귀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인정해야, 겸손하게 내 형제자매들을 만날 수 있고

배우려는 자세로 한몸살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어깨 힘 빼고, 내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나누면 그것을 함께 짊어지고, 

풀어갈 준비가 되있는 동지들이 있다는 것 믿고 힘차게 길 걷고 싶다. 


* 신도의 공동생활을 읽으며, 한몸살이를 조금이나마 글로 정리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물론 한몸살이의 경험과 삶이 글로 다 담기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글과 말을 방편으로 삼아 제가 하는 한몸살이를 정리해볼 수 있었던 것은 좋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몸이뤄 사는 삶이 어느 곳에 뿌리를 둔 삶인지, 

  그 삶을 살아갈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앞서 한몸살이 하셨던 본회퍼 목사님 이야기로 들으니 더 뜻깊게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