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한몸살이/1. 공지훈

요한복음 17장 묵상

양선재 2018. 2. 28. 14:32


요한복음 17장 묵상

영생은 단순한 시간적인 지속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질적인 차이가 있는 생명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죽어서 확인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지금 누리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3). 이 영원한 생명과 사귐으로 초대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합당한 반응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이길형)

수련회 이현준 목사님의 말씀 중 영생은 시간적 의미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성도의 특징- 이라고 하신 부분이 3절 말씀을 통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니이다.” 하지만 그동안 영생이란 개념은 그저 부활이후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사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여기서도 드러낼 수 있는 영생의 의미 -아는 것- 을 잘 드러내며 살고 싶습니다. (박시훈)

너희의 믿음으로 하나님이 너희를 친히 사랑하셨다. 내가 구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하나님께 직접 구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나를 반성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직접 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는데, 나는 그 권한을 받고도 나를 위해, 주변을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태만한 모습이었다. 직접 구해야 한다. 내가 구하지 않고도 하나님께서 미리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려야 겠다. 내가 새로워지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며칠을 못 간다. 내가 약한 존재임을 시인하고, 하나님께 매일 거듭나기를 기도하자.(희연)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21) 교회의 신비는 하나되는 관계에 있다. 이 관계를 알지 못하면, 또 경험하지 못한다면, 성령의 신비를 깨닫기 어렵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긴 싸움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악에 빠지지 않는 힘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되는 관계 속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교회 안에 있으면 이미 그 관계 안에 있다고 착각에 빠질 수 있다. 한몸 이루는 삶의 사건들을 계속해서 자각하지 않으면, 공동체의 삶도 관습적인 삶이 될 수 있다. 지난 과정을 돌아보니 내가 입장을 애매하게 했을 때, 실수하고 놓치게 되는 게 많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이번 주는 입장을 분명히 하려고 애를 썼다.(주원)

왜 우리 순례를 안산에서 시작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까닭은 안산이 우리시대의 아픔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땅임은 물론이고, 안산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하나님나라를 사는 사람은 결국 기억해야 할 것을 끝까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 들으며, 기억해야 할 것들, 이 땅의 아픈 역사, 내가 해온 고백 따위를 잊지 않고 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주은)

영생은, 현세를 초극한 무한의 영역 속에서 죽음 없는 삶을 영위하는 게 아니라 지금 발딛은 이 순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아는 이들과 더불어 하나님나라를 선취하는 일상을 사는 삶입니다. 말씀 안에서 삶을 맞대며 한 몸 이루어 가는 관계성이 부재한 채, 하나님나라를 위한 명목으로 외치는 거창한 구호와 담론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대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