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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뉴스. vol.32] "샌프란시스코 어린이 창의성 박물관 3_로봇 코딩 교육"

양선재 2015. 8. 30. 21:17

[창의뉴스. vol.32] "샌프란시스코 어린이 창의성 박물관 3_로봇 코딩 교육" 

 보낸사람 : 크레존 15.08.30 07:08

 창의인성 교육포털크레존 (http://www.crezone.net/)

 

샌프란시스코 어린이 창의성 박물관 3_로봇 코딩 교육

 

조윤경(이화여대 교수, UCSB 교환교수)

*이 글은 조윤경 교수가 집필한 미국의 창의교육에 관한 8번째 연재 글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어린이 창의성 박물관 3_로봇 코딩 교육

 

‘테크놀로지 랩실’에서 이뤄진 Robot Coding 교육에 대한 글로 어린이 창의성 박물관 취재 시리즈를 마치고자 한다. 이곳에서는 어린이들이 ‘코딩’, ‘프로그래밍’, ‘로봇’이라는 IT 세계에 자연스럽게 입문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랩실 안을 들어가면 담당 선생님이 이곳에 처음 왔는지를 묻는다. 처음 왔다고 하면 로봇 제작소로 데리고 간다. 마련된 기본형 로봇에 이름을 부여하고, 옆에 구비된 재료로 자기만의 로봇을 꾸미는 단계이다. 로봇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물건’ 내지 ‘장난감’이 아니라 자신의 ‘피조물’이자 ‘친구’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1 자기만의 로봇 꾸미기

(그림 1. 자기만의 로봇 꾸미기)

 

그림2 구비되어 있는 재료들

(그림 2. 구비되어 있는 재료들)

 

다음은 미니언을 연상시키는 눈 하나달린 왕눈이 로봇(기분 좋으면 눈에서 번쩍번쩍 총기어린 불빛을 보낸다)을 제어하는 코스가 난이도별로 마련되어 있다. 첫 코스의 미션은 장애물에 부딪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로봇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담당 선생님이 1:1로 아이 옆에 앉아 어떻게 명령을 입력하면 Jenny(아이가 붙인 로봇의 이름)가 앞, 뒤, 옆으로 움직이는지, 거리 계산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Jenny가 간단한 말을 할 수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면 선생님은 “원하면 언제든지 질문해라”며 자리를 뜨고 남은 것은 아이의 몫이 된다. 내 아이처럼 명령값을 조금씩 입력하면서 Jenny가 어느 방향으로 얼만큼 가는지를 조심조심 살피며 아기 다루듯 로봇을 움직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개구쟁이 남자아이는 장애물을 넘어뜨리면서 거침없이 로봇을 쌩쌩 움직이고 있었다. 로봇이 넘어지고 쓰러지고 부딪쳐도 그게 대수냐는 듯이 말이다. 로봇이 아이들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움직이는 게 재미있다.

그림3 장애물 피해 움직이는 첫 번째 코스

(그림 3. 장애물 피해 움직이는 첫번째 코스) 

그림4 이동경로를 계산해서 신중히 입력하고 있는 아이

 

(그림 4. 이동경로를 계산하며 신중히 입력하고 있는 아이)

 

자신의 로봇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미로 탈출하기 단계가 기다리고 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가장 지루한 단계였다. 미로가 설정되어 있으니 부딪치지 않고 탈출하려면 아주 섬세하고 정교하게 값을 입력하는 게 중요하다. 미로 벽에 cm로 거리가 표시되어 있어서 거리감을 가지고 값을 입력해야 하고, 왼쪽으로 돌아야 하는지 오른쪽으로 돌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계산해야 했다. 많은 시간과 굉장한 집중, 인내심이 필요한 단계였는데도 불구하고, 이 단계를 도전하는 어떤 아이도 싫증을 내거나 포기하지 않고 초집중하며 로봇을 탈출시키는데 온 힘을 다한다는 사실이 감탄스러웠다. (아이를 앞세워 음악 스튜디오도 취재하고, 오후에는 다른 과학박물관도 한 군데 더 가보고 싶었던 나는 참다 참다 ‘이 정도로 해봤으니 이제 다른 곳에 가는 게 어때?’라는 무식한 발언을 내뱉고야 말았다. 아이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쳐 결국 오후의 일정과 다른 스튜디오 취재도 포기한 채 두 세 시간을 더 테크노 랩실에서 보냈다. 101번 도로를 10시간 달려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찌나 아쉽던지... 아무래도 샌프란시스코는 또 가야 할 듯하다.)

그림5 2단계 미로빠져나가기 코스

 

(그림 5. 2단계 미로 빠져나가기 코스)

그림6 거리 및 회전 방향을 차근차근 입력해야한다

(그림 6. 거리 및 회전 방향을 차근차근 입력해야 한다.)

 

로봇을 인간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걷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애를 썼던가. 이 아이들 또한 자기의 분신과도 같은 로봇친구를 탈출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 자기와의 싸움, 자기만의 즐거운 도전을 하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 하나같이 환한 미소로 환호성을 지르는데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굳이 교육적 효과를 따지자면, 수학, 과학, 창의성, 인성 교육이 통합적으로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로봇이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코스도 있었다. 앞의 두 과정이 정확한 값을 계산하고 입력하여 로봇이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기쁨을 주었다면, 그림 그리는 로봇의 경우는 의도와 우연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그림을 지켜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실로폰을 연주하는 로봇의 경우, 마치 작곡가가 작업을 하듯 음악의 값을 입력하고 반복해서 들어보면서 자기가 입력한 부분에서 흡족하지 않은 부분들을 수정할 수 있다.

 

그림7 그림그리는 로봇

(그림 7. 그림 그리는 로봇)

 

그림8 악기를 연주하는 로봇

(그림 8. 악기를 연주하는 로봇)

 

내가 한참 과학기술과 상상력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면서 논문을 쓰고 있었을 때(관심 있는 분들은 조윤경, <포스트휴먼과 기술적 상상력>, 기호학연구 26권, 2009년을 참조하세요) 그림 그리는 로봇화가 RAP(Robotic Action painter)의 작업을 흥미롭게 들여다 본적이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 전문 아티스트인 레오넬 무라 Leonel Moura가 탄생시킨 로봇인데, “독립적이고 섬세한” 아티스트인 RAP는 스스로 아름다움과 작품의 완성도를 판단하여 “작품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자신의 서명을 한다.

A signature completes Leonel Moura's RAP's "nonhuman art."

(그림 9. RAP의 작품)

 

이런 RAP의 그림은 ‘인간이 아닌 로봇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로봇이 만든 그림’이며, 나아가 ‘인간이기도 하고 로봇이기도 한, 주체이기도 하고 도구이기도 한 대상이 그린 그림’이다. 헷갈리는가? 요컨대 기술적 상상력은 인간과 기계, 두뇌와 프로그램의 불분명한 경계면에서 촉발된다. 이때의 창작은 인간-창작자와 기계-창작자의 협업으로 이뤄지며, 인간-창작자는 만드는 자가 아니라 기계-창작자를 작동시키고 창조의 과정을 지켜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얼마 전에 지인인 전병삼 대표로부터 자기 아들이라고 소개한 ‘전병삼룡이’의 성장과정에 대한 얘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국립국어원에 등록된 단어들을 랜덤으로 조합해서 시를 창작하는 로봇인데, 로봇답지 않게 ‘삼룡이’같은 인간적인 어설픔도 갖고 있다.

그림10 전병삼룡이

(그림 10. 전병삼룡이)

이와 같이 인간들은 청소 로봇이라든가 가정부 로봇처럼 인간에게 편리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로봇을 만들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음악을 창작하는 상상력과 심미안을 가진 로봇들을 만들면서 예술의 영역을 새롭게 확장하고자 한다. 팻 메스니 Pat Metheny의 특별한 공연 또한 그런 시도 중 하나였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소장의 자동연주 피아노에 매혹당한 메스니는 유명한 음악가가 된 후 ‘오케스트리온 프로젝트 Orchestrion Project’라는 흥미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팻 메스니가 자동으로 연주하는 악기들과 함께 협연을 펼치는 프로젝트였는데, 우리나라 내한 공연 때 나도 가서 보았다. 마치 자신을 서포트하는 동료 연주가인 것처럼 사랑스러운 눈길로 악기들을 바라보면서 신들린 연주를 해나가는 팻 메스니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신기하거나 실험적이라고 느껴지기보다는, 여러 악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생생한 라이브 현장에 있는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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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Pat Metheny의 Orchestrion Project)

 

이와 같이 기술적 상상력은 오로지 인간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던 상상력의 영역을 인간과 기술이 합쳐진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기술적 상상력은 기계를 도구나 수단이 아닌 주체로 상정하면서, 세계를 구성하고 변형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 신촌에 있는 ‘다주쇼핑센터’에 가서 납땜을 해서 배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드는 키트를 사는 것을 좋아했던 동생에 비해,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던 나는 통 만들기 쪽에는 관심이 없었다. 문과, 이과를 확실히 구분할 때 학교를 다녔던 지라 ‘나는 문과 성향이니까’라는 울타리 안에서 새로운 기술 변화에 대해 아예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기계를 만지면 자꾸 기계가 망가진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조차 하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 뒤늦게 변화하는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되니 폐쇄적이었던 어린 시절의 삶이 새삼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질 때 그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두려움 없이 배우고 사용해보고 해야 세상과 함께 발전을 해 나가는데, 계속해서 그 흐름을 놓치니 다시 회복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로봇 코딩 교육 현장을 지켜보면서 변화에 빨리 적응하고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우리나라 아이들이 그 장점을 살려 미리 자기의 한계를 긋지 말고 새로운 기술들을 교육의 현장에서 많이 접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롭게 추진되고 있는 문·이과 통합교육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 UCSB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