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교육/7. 초등교육

[옮긴 글]샌프란시스코 어린이 창의성 박물관 1_혁신 교육

양선재 2015. 8. 14. 18:17

[창의뉴스. vol.27] "샌프란시스코 어린이 창의성 박물관 1_혁신 교육" 

보낸사람 : 크레존 15.08.1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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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어린이 창의성 박물관 1_혁신 교육

 1.어린이뮤지엄

 (샌프란시스코 어린이 뮤지엄)

 

2.어린이뮤지엄

(샌프란시스코 어린이 뮤지엄)

 

“이노베이션 랩실에 온 걸 환영한단다. 잘 할 자신 있니?” 샌프란시스코 어린이 창의성 박물관 Children’s Creativity Museum 3층 이노베이션 랩실에 있는 젊고 발랄한 여자 선생님이 딸에게 물었다. 딸이 자신 있다고 대답하자 몇살이냐고 묻고 9살이라고 대답하자 explore나 adventure 코스 중에서 미션카드를 한 장 뽑으라고 했다. adventure가 더 어려운 과제라고 말했음에도 도전의식이 발동했는지 딸은 adventure에서 하나의 미션을 골랐다. 선생님은 큰 소리로 미션을 읽으라고 했다. 딸은 다음과 같은 미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3.미션안내판

 (미션 안내판)

 

 

“A music-eating monster is on a rampage and it can hurt people who stand between it and it’s dinner. Everyone is afraid, but they still want to listen to music. Create a way to keep the world’s music safe without turning it off forever.”

“음악을 먹는 괴물이 마구 날뛰고 있어서 괴물과 그의 저녁 식사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면서도 여전히 음악을 듣고 싶어 한다. 세계의 음악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

 

“자, 이게 네가 해결해야 할 문제란다. 잘 해결할 자신이 있니?” 다시 ‘자신 있냐고’ 묻자 딸은 (이번에는 얼떨결에) 자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미스터리 박스를 하나 고르라고 하더니 그 안에 있는 재료로 위 문제를 해결하는 미션을 수행하라고 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늘어진 털실, 종이 만들기 재료, 휴지심, 빨대, 나무 스틱, 검은 천, 초콜릿 감싸는 얇은 플라스틱과 가위, 붕대 붙이는 테이프가 들어있었다. 미션지와 재료를 앞에 놓고 딸이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근래 들어 본 가장 진지한 표정), 나는 다시 미션 데스크로 갔다. 다른 미션 문제들이 궁금해서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허락을 받고 자세히 보니 이노베이션 챌린지의 미션은 연령별로 나눠져 있었다. 2~3세는 create, 4~5세는 discover, 6~8세는 explore, 8+세는 adventure에서 질문지를 고르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2~3세 미션지에는 아주 간단한 한 단어, 예컨대 “다리 a bridge” 등의 단어들이 씌어 있었고, 4~5세 코스는 이것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단어, 예컨대 “엑스레이 안경 X-ray goggles”이 씌어 있었다. 이 연령대의 아이들은 미스터리 박스의 재료를 가지고 자기가 생각하는 다리나 엑스레이 안경을 만들면 되는 거였다.

 

4.이노베이션미션지

(이노베이션 미션지)

 

6~8세의 경우에는 조금 더 상상력이 가미된 오브제가 미션으로 주어졌다. 주로 이 세상에 없는 도구를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예컨대 “인간을 동물로, 동물을 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기계 A machine that can turn humans into animals and animals into humans”라는 미션이 적혀 있는 식이었다. 그리고 8세 이상의 ‘모험’ 코스는 딸이 뽑은 미션지처럼 조금 더 정교하고 복잡한 스토리텔링이 되어 있었다. 질문들이 하나같이 흥미롭고 재밌었고 문제를 풀려면 조금 더 깊은 생각이 요구되었다. 가령 다른 질문은 “The climate is slowly warming in Chocolate Land and the whole land is starting to melt! How can you save Chocolate Land and all of its residents from becoming just a ses of chocolatey goo? 초콜릿 나라의 기후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어서 온 세상이 녹고 있다. 어떻게 초콜릿 나라와 그 곳에 사는 주민들이 초콜릿 범벅이 되는 것을 피할까?”라는 것이었다.

 

요컨대 이런 질문들의 패턴은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지구온난화, 소음과 음악의 차이)와 상상력의 세계(음악을 먹는 괴물, 초콜릿 나라...)가 가미되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문제를 던져주고 현실과 상상을 함께 맛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질문이었다. 너무 현실적이면 실용적인 틀에만 갇히게 되고, 너무 상상으로만 일관되면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이 되니까 그 두 가지가 함께 결합된 아주 좋은 질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었던 딸의 스토리텔링이 시작되었다. 음악을 먹는 괴물을 물리치는 더 무서운 괴물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딸에 의하면 그 괴물은 음악을 먹는 괴물보다 무섭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괴물이라는 미덕이 있었다. 엄청 멋진 생각이라고 칭찬을 해줬더니 여러 가지 재료로 신 나게 음악을 사랑하는 괴물(줄여서 음사괴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5.미스터리박스

(미스터리 박스)

 

6.미스터리박스내용물

(미스터리 박스 내용물)

 

재료는 종이, 천, 플라스틱, 실, 나무 등 단단한 것과 부드러운 것, 두꺼운 것과 얇은 것, 곡선과 직선, 휘어지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재질의 것이 골고루 들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딸은 휴지심을 몸통으로 만들고 털실을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나무스틱을 창처럼 붙였다. 송곳니도 붙이고 눈도 크게 붙이고... 열심히 만들더니 머리가 될 만 한게 없을까? 갸우뚱하더니 초콜렛을 싸는 얇은 껍질을 찾아내었다. 그러고 보니 그게 스피커모양 같기도 했다.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음악사랑괴물의 머리는 스피커로 되어 있어서 거기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것이었다. 음악을 먹는 괴물을 무찌르면서도 음악을 계속해서 보존해야한다는 미션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스토리텔링이 되는 순간은 자신만의 관점이 세워지는 순간이고, 그렇게 되면 초콜릿을 감싸는 얇은 플라스틱 틀이 일상적인 용도에서 벗어나 스피커로 전환되어 보인다. 창의성의 프로세스에서는 흔히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다. 그리고 으레 ‘물구나무 서서 세상을 보라’ ‘거꾸로 뒤집어서 보라’ 라고 얘기들을 하지만 사실 발상의 전환은 아무런 계기도 없이 그냥 한번 물구나무를 서보고 뒤집어 보는 데서 일어나지 않는다. 자기가 해결하고 싶은 절실한 문제가 있을 때, 자기의 질문이 있는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초콜릿 껍질이 스피커로 바뀌는 전환의 순간이 오는 것이다.

 

7.초콜릿 껍질이 스피커로 전환

 (초콜릿 껍질이 스피커로 전환)

 

정리해보면 다양한 생각의 뜀틀대 역할을 해 줄 흥미로운 이야기-문제,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신만의 스토리텔링, 그리고 그걸 실제적인 재료로 만들고 구현해가면서 생각을 심화시키는 과정이 이 미션의 창작 프로세스임을 딸과 미션을 수행하는 다른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의 작업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의 과정까지가 이 미션의 끝이었다. 완성된 작품을 들고 가서 딸은 자신의 영어실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선생님에게 자신의 컨셉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들어주던 선생님은 매우 훌륭하게 미션을 수행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하이 파이브를 청했다. 창의성은 미스터리 박스와 닮아 있다. 그 안에서 뭐가 나올지 모르고 그 안의 것들로 뭐가 만들어질지 모른다. 뭐가 답인지도 모른다. 황당한 결과물과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결과물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결과물이 정답은 아니다. 모든 창의적인 결과물의 의미는 그 결과물이 나오기 까지 과정에서 어떤 자신만의 깨달음이 왔고, 그걸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전-완성시켰는지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황당한 결과물..하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빠 어디가’의 열풍이 한창일 때 갯벌에서 ‘쏙’을 캐내는 장면을 보고 딸이 ‘우리도 저거 하자’ 졸라대서 서해안에 간 적이 있다. 이런 가족들이 많은지 펜션에는 장화와 삽, 맛소금이 구비되어 있었다. 펜션 사장님이 알려주신 요령은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숨구멍이 있는 곳을 삽으로 살짝 판다. 그러면 더 큰 구멍이 보일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 살살살 맛소금을 뿌려라. 쏙이 강한 바다내음에 이끌려 자신의 속살을 쏙 내밀 것이다. 그때 재빨리 잡아당겨라. 그러면 쏙을 얻으리라...

 

설명을 들으니 정말 쉬워 보였다. 그러나 늘 그렇듯 현실은 다른 법. 서울에서 큰 꿈을 안고 올라온 우리 가족은 두 시간 내내 간신히 세 마리를 잡았다. 저쪽은 다섯 마리 잡았던데? 부추기는 아이 때문에 옆의 가족들과 경쟁이 붙기도 했다(아~ 별걸 다 경쟁한다 우리는. 하지만 경쟁은 우리의 힘!). 물은 점점 밀려오는데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발길이 쉽게 옮겨지지 않았다. 너무 아쉬워 다음 날 다시 도전했지만 처참하게도 다음날은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랬더니 갑자기 남편이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큰 삽으로 같은 자리를 열심히 파는 게 아닌가. 집이라도 지을 기세였다. 약간 창피하기도 하고, 저런 무식한 사람을 내 남편으로 두었나 싶기도 하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거야 싶기도 하고.. 당황하는 사이 순식간에 엄청나게 큰 구멍이 파이고 큰 구멍에는 바닷물이 고이고... 그래도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삽질을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뭐가 꿈틀했다. 의기양양해진 남편이 온힘을 다해 꿈틀거리는 물체를 잡아당기니.... 쏙은 아니었고 엄청나게 큰 개불이 나왔다. “엄마야~ 이 괴물같은게 개불이래요~ ” 딸이 신기해서 소리지르는 사이 삽시간에 구경꾼들이 모여들고 다들 부러운 눈초리로 우리의 개불을 구경했다. 쏙이 목적이었고, 쏙을 캐는 방법은 틀렸으나 자기 나름으로 뭔가 했더니 뜻밖의 것이 얻어지더라... 이건 뭔가 창의성의 과정과 흡사하지 않은가. 목표지점의 결과를 미리 계산해서 목표로 가는 지름길을 설정하게 되면 이런 ‘다른 것’은 나올 수 없는 건 확실하다. 그래서 더더욱 결과물에 대해 섣불리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기가 가진 생각을 어떻게 펼쳐서 자기만의 결과물로 만들어냈는지 그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스턴에 사는 친구에게 샌프란시스코 어린이 박물관 경험담을 흥분해서 얘기했더니 미국 어린이 박물관은 다 그렇다며 별거 아니라는 듯 얘기한다. ‘우리’ 보스턴 어린이 뮤지엄은 더 환상적이라며 자랑까지 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그쪽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을까. 이런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1년을 더 부지런히 뛰어다녀야겠다는 의욕이 더욱 솟구치는 순간이었다.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 UCSB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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