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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뉴스. vol.28] "샌프란시스코 어린이 창의성 박물관 2_애니메이션 교육"

양선재 2015. 8. 18. 15:40

[창의뉴스. vol.28] "샌프란시스코 어린이 창의성 박물관 2_애니메이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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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어린이 창의성 박물관 2_애니메이션 교육

 

 

조윤경(이화여대 교수, UCSB 교환교수)

*이 글은 조윤경 교수가 집필한 미국의 창의교육에 관한 5번째 연재 글입니다.

 

 

다섯 살 이상의 연령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갔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정지한 물체를 조금씩 이동시키면서 카메라로 촬영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촬영 기술)의 제작부터 촬영까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원하는 시간에 스튜디오에 들어가 비어 있는 테이블에 앉으면 촉진자facilater 역할을 하는 선생님이 다가와 설명을 한다. 제작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해주는 게 아니라, “나중에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될 테니 우선 이 테이블에서 네가 원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보렴. 질문 있으면 언제든 나를 찾고.” 하면서 재료를 주고 첫 단계만 자세히 설명해주고 가버렸다. 질문이 있으면 가서 물어보고, 한 단계가 끝나면 다음 단계의 설명을 들으면 되는 거였다. 이렇게 누구든 자기의 호흡대로 천천히 제작을 해나가면 되는 프로세스가 인상적이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1. 캐릭터의 틀이 되는 철심맨 제공

 

철심맨(편의상 내가 붙인 이름)은 아주 쉽게 구부러져서 구부리는 데 따라 인간, 동물, 식물, 괴물로 변신 가능하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캐릭터를 구성하는 가장 단순한, 그러나 매우 구체적인 뼈대를 경험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변형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림1

[그림 1. 제공된 철심맨]

 

그림2

[그림 2. 철심맨의 변신은 무죄]

 

2. 예시자료 및 철심맨의 살이 되어줄 기본 클레이 제공

 

철심맨으로 무엇을 만들지 결정할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주기 위해 여러 장의 가능한 예시자료가 구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보고도 전혀 다른 걸 만드는 아이들도 있었고, 그대로 만든다고 만들었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아 예시자료와 흡사하지 않은 걸 만드는 아이들도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생각의 도약대가 예시자료의 역할이라는 게 핵심.

 

그림3

 [그림 3. 지렁이와 소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예시자료를 연구하고 있는 아이]

 

그림4

 [그림 4. 점점 살이 차오르는 철심맨]

 

3. 기본 클레이 작업 완료 후 색깔 클레이 제공

 

기본 클레이로 자기가 만들 캐릭터의 형태가 완성되면 데스크 앞에 있는 선생님에게 필요한 색깔 클레이를 달라고 하여 캐릭터를 완성시킬 수 있다. 데스크에는 형형색색 아름다운 색깔 클레이가 구비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신나게 들락날락하며 하얀색 주세요, 분홍색 주세요, 하늘색 주세요... 하며 클레이 얻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었다. 만드는 과정에서 촉진자 선생님들의 역할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활기차게 돌아다니다가 아이들에게 “잘되고 있니? 뭘 만들고 있니?”라고 물었다. 아이가 자기랑 소랑 원숭이랑 뱀을 만들고 있다고 대답하자 “무슨 이야기를 만들거니? 애니메이션 제목은 뭐니? 네가 소랑 고릴라(원숭이가 고릴라로 둔갑. 나중에는 아빠의 별명인 은둔괴물 바야바로 둔갑)랑 뱀을 만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데?”하며 끊임없이 아이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끌어냈다. 그리고 아이가 한 단계를 끝내면 하이 파이브를 해주고 칭찬을 듬뿍해주었다.

그림5

 [그림 5. 딸이 만든 애니메이션 <아이와 친구들>의 캐릭터]

 

함께 온 부모들 또한 끊임없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기가 나서서 이렇게 만들어라 저렇게 만들어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아이가 “아빠 내가 만든 이 눈사람 진짜 멋지지 않아요?” 물어보자 하하하 웃으면서 “진짜 멋지네. 이 눈사람 이름이 뭐니?” 이렇게 대답하는 식이었다. 그러면 아이가 신나서 “눈사람 이름은 피콜로인데, 어디에서 왔고 얘 친구는 누구인데...”하고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 냈다.

 

4. 간단한 스토리텔링 후 애니메이션 제작

 

자신이 생각한 스토리에 맞는 배경을 고르고, 카메라와 모니터가 장착된 무대 위에 배경을 설치하여 그 앞에 자신의 캐릭터를 위치시킨 후 조금씩 조금씩 이동을 시키면서 촬영을 하였다. 아이는 이 네 명의 캐릭터들이 차례대로 만나는 과정을 촬영했다. 특히 이야기 전반부에는 서로 너무 놀라 나자빠지는 장면을 낄낄대며 매우 공들여 촬영하였다. 이야기 후반부에는 서로 친구가 되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놀이를 하는 동작을 매우 인내심 있게 촬영하여 애니메이션을 완성하였다. 완성한 애니메이션은 e-mail로 첨부해서 보낼 수 있고, 만든 캐릭터들은 도네이션 상자에 캐릭터 당 1달러를 넣으면 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그림6

 [그림 6. 배경을 고르고 캐릭터를 위치시킨 후 촬영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들]

 

그림7

 [그림 7. 분홍 소를 만난 아이 장면 촬영 중]

 

지금까지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이런 교육 프로그램이 있을 경우 대개 1회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2회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등으로 제한 인원을 설정한다. 그러면 각 회별로 참여한 모든 참가자들은 같은 운명에 놓이게 된다. 선생님은 모든 참가자들을 교실과 흡사한 자리에 일제히 앉혀 놓고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파워포인트나 구두로 길게 설명한 후 “자 이제부터 실습을 해보겠어요” 한 다음 “자기가 만들 캐릭터를 상상해보세요”, “만들어보세요”, “이제 찍어보겠어요” 하면서 모든 아이들이 같은 단계를 밟도록 유도한다. 그리하여 먼저 끝낸 친구들은 지루해하고, 조금 시간이 필요한 친구들은 완성도 못하고 다음 단계의 설명을 들어야 되며, 그러다보면 상상력의 나래를 펼칠 시간이나 자기만의 개성을 펼칠 시간도 없이 허둥지둥 진도 따라가기에 급급하게 된다. 선생님이 이미 정립되어 있는 애니메이션 이론에 맞게 실습을 시키는 방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만드는 결과물들이 틀에 박힌 것이 될 가능성도 크다.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참관하면서 교육 방식이나 교육의 목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의 교육 목적이 지식습득(애니메이션 만드는 방법 습득)에 더 초점화되어 있다면(이때 실습은 그 방법론을 습득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뤄진다), 반면에 이곳의 교육 목적은 훨씬 더 창작(자기만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창의력 신장의 측면에서 후자가 더 유리해 보인다.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론가 혹은 비평가의 입장에 서 있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는 경험을 하게 되면 애니메이션 만드는 방법이 저절로 체득되고, 심지어 정형화된 매뉴얼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도 있게 된다.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지식전달의 의무감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 UCSB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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