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교육/7. 초등교육

[창의뉴스. vol.55] "기념일을 기념하는 미국의 방식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글 조윤경

양선재 2015. 11. 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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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크레존 담당자
  • 등록일2015.11.05
  • 조회수371

평소 같으면 <잊혀진 계절>을 들으며 차분히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을 10월의 마지막 밤, 나는 급히 구한 우스꽝스러운 마법사 모자를 눌러쓰고 어색해 하고 있었다. 바이아 디에고 Via Diego 길에 어둠이 내릴 무렵이었다. 좀비 축구선수, 포카 혼터스, 요정 신부, 낙엽 여신, 해골 수도사, 치타로 분장한 아이들이 바구니 하나씩을 들고 길을 나섰다. 빨간 망토를 두른 엄마, 검은 이브닝 드레스에 검은 가면을 쓴 또 다른 엄마, 슈렉의 귀를 단 머리띠를 쓴 아빠 등 부모들이 손에 후레쉬를 들고 아이들의 뒤를 따랐다. 부모들의 복장이 아이들보다 어설퍼 다행이었다. 슈렉 아빠는 물과 비상약 등을 넣고 조명으로 장식한 수레를 끌었다.

 

“Trick or treat! 장난을 칠까요 아님 사탕을 주실래요!”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흥분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호박 초롱불(Jack-o-lantern)을 예쁘게 밝혀놓은 집의 문이 열렸다. 할머니가 바구니에 초콜릿과 사탕을 담아주면서 “happy halloween!”이라 화답했다. 아이들은 다음 집, 또 다음 집 우르르 몰려다니며 “trick or treat”을 외쳤다. 갓난아기를 안은 엄마,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 할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고 바구니에 사탕을 담아주었다. 인심들이 후해서 바구니가 금방 그득해졌는데도 아이들은 한 집이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초인종을 눌렀다.

“Trick or treat!”은 자기만의 영역을 철저히 지키는 이 나라에서 굳게 닫힌 문을 여는 암호와 같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열려라 참깨~를 외치는 알리바바처럼 보였다. 물론 모든 집의 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사탕 단지를 문밖에 내어놓고 아이들이 알아서 가져가게 하며 ‘셀프 서비스’를 지향하는 집들도 있었고, 불을 다 꺼놓고 묵묵부답인 집들도 꽤 있었다. 대체로 집 앞 뜰을 재미있게 꾸며 놓고 조명을 밝혀 놓은 집들의 문이 쉽게 열렸다. 정원을 걸어가면 발밑에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하고, 창문에서 해골유령이 꿈틀꿈틀 움직여서 오싹 몸서리가 쳐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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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탕을 사냥하는 아이들

 

날씨는 온화하고 밤공기는 맑았다. 하늘에 이토록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구나, 새삼 감탄했다. 바이아 디에고 거리를 면한 양쪽 집들을 샅샅이 훑고, 프리마베라 Primavera 거리의 집들도 쭉 돌았다. 아이의 바구니에 1년 내내 먹어도 다 먹지 못할 양의 온갖 과자들이 가득 찼다. 덕분에 미국에서 파는 온갖 종류의 사탕, 젤리, 초콜릿, 과자를 한 번에 구경할 수 있었다.

 

공포영화는 질색인 나에게 솔직히 할로윈 데이는 썩 달갑지 않았다. 온갖 해골, 미이라, 거미, 박쥐, 잘린 손, 유령, 좀비들이 한 달 전부터 가는 거리 거리마다 가득했다. 왜들 이러나? 그것들과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치기를 피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죽음과 온갖 어두운 것들, 두려움의 대상을 정면으로 드러내놓고 즐기고 있다. 자기들이 스스로 그 대상으로 변장해보고, 귀여운 만화 캐릭터로 변형시킴으로써 평소 살아가느라 잊고 있었던, 혹은 외면하고 있었던 죽은 자, 혐오스러운 존재들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빛과 어둠, 삶과 죽음, 긍정과 부정의 가치는 전도된다.

 

할로윈은 죽은 자의 혼령을 달래주기 위해 벌이던 아일랜드 켈트족의 축제에서 유래했다. 가톨릭에서 순교자들을 기리는 모든 성인 대축일(만성절) 전야제와도 합쳐지고 변형되어 오늘날의 축제와 같은 할로윈 데이가 되었다. 토요일이라 낮에 딸과 함께 ‘Oak park’에 갔더니 아이들이 온갖 분장을 하고 나와 호박 볼링, 사탕 고리던지기, 풍선 터뜨리기 등 재미있는 미션게임을 수행하고 사탕을 받고 있었다. 꼬마들에게 스타킹을 뒤집어 씌워 누가 오래 버티나를 겨루는 숨막히는 게임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밴드가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고, 애나 어른이나 모두들 싱글벙글 시골 장날 같은 정겨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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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 복장의 아이가 변기에 휴지를 골인시키는 게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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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탈진 바구니에 공 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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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킹 뒤집어쓰고 오래 버티기

 

아이의 학교에서는 할로윈 데이 즈음하여 미술 시간에 ‘해골 아름답게 꾸미기’ 활동을 했다. 필름같이 매끈한 검은 종이 위에 해골 모양을 따라 이쑤시개로 긁으면 오색찬연한 색들이 도드라져 나오는 ‘scratch art’였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검은색 크레파스로 꼼꼼히 메운 후 이쑤시개로 긁어냈었는데, 아예 색깔이 처리된 검은 필름이 있어서 신기했다. 미술 선생님은 늘 재미있고 다양한 매체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 그녀는 자신이 직접 그린 샘플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할로윈 데이’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선델 선생님의 이 수업의 도입부가 나는 특히 좋다. 절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그냥 수다를 떨 듯 툭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디아 드 로스 무에르토스 Dia de los Muertos. 이 발음 맞아요?”

했더니 멕시코계 백그라운드가 있는 한 아이가 완벽한 발음으로 “디아 드 로스 무에르토스”를 자신있게 발음했다.

“멕시코에서는 우리랑 다른 방식으로 ‘죽은 자의 날’을 기념한다고 하죠?”

했더니 그 아이가 자신이 아는 멕시코의 문화를 열심히 설명했고,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경청했다.

이어지는 선델 선생님의 지시사항은 정확했다.

“이 필름은 민감해요. 그래서 기름 묻은 손으로 만지면 이렇게 자국이 나요. 얼룩이 진 부분은 이쑤시개로 긁어도 긁혀지지 않으니 조심하세요.”

“이쑤시개로 긁어낼 때 가는 선으로 하지 말고, 굵은 선으로 여러 번 겹쳐서 뚜렷이 도드라지게 하세요.”

지시사항을 들은 아이들이 각자 자리로 들어가 열심히 해골 꾸미기 작업에 착수했다. 칠판에는 선델 선생님이 패러디하여 그린 뭉크의 <절규>가 붙여 있었다. 심각한 뭉크의 그림은 유머러스하게 변형되어 있었고, 나는 그 그림과 오늘 주제와의 연결고리가 너무 재밌었다. 아이들에게 “저거 누구의 그림인지 아니?”라고 물어보고 싶어 죽겠는데, 선델 선생님은 끝까지 그 그림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내가 선델이었다면 백 번 뭉크가 누구인지, 이 그림은 어떤 그림인지,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 장황하게 설명을 했을 텐데 말이다. 자신은 흥미로운 환경만 제공하고, 아이들 스스로가 발견하고 궁금해 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좋은 교수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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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스크래치 아트 작업을 하고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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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판에 게시된 그림들

 

미술 수업이 있었던 날 오후에는 학교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할로윈 퍼레이드’가 있었다. 선생님들을 포함하여 유치원생부터 6학년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할로윈 복장을 하고 퍼레이드를 하는 행사였다. 시간이 되어 음악이 울리자 담임선생님을 따라 유치원생들부터 줄줄이 나와 운동장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불가사리, 미니언, 상어, 백설공주, 도너스, 요정, 은둔괴물, 공룡, 카우보이, 건담, 이집트 여왕... 다양한 복장을 한 아이들이 줄지어 걸어갔다. 페인트칠을 한 얼굴, 앞이 보일까 걱정될 정도로 완전히 가린 복장 등 상상한 것 이상으로 강렬했다.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분장을 하고 걸어가니 더 재미있었다. 가면, 셔츠, 신발 등 완벽하게 배트걸로 분장한 선생님, 플라밍고 댄서로 분장한 선생님,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황 형광색으로 치장한 선생님 등 선생님들도 화끈하게 변신했다. 늘 차분한 편이신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크레욜라 상자를 뒤집어쓰고 카메라를 외면하면서 새침하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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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로윈 퍼레이드

▲ 할로윈 퍼레이드 동영상

 

그런데 한참 재밌으려고 하는데 그게 끝이었다. 웃고 떠들며 한 바퀴 운동장을 돌더니 다시 반으로 돌아가서 가방을 챙겨 순식간에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각자의 집으로 해산하였다. 실컷 힘들게 복장을 꾸미고 와서 운동장 한 바퀴 도는 게 끝이라니. 복장을 갖춰 입은 게 너무 아깝지 않은가.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심지어 사회자도 따로 없었다. 우리 같았으면 어떤 기획된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텐데. 하다못해 베스트 분장 콘테스트나 장기자랑이라도 말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그런 단순함이 괜찮게 여겨지기도 했다. 콘테스트 등 프로그램이 첨가되면 모종의 경쟁이 생기고 각종 폐해가 생기고 부모들한테 부담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자기가 정한 컨셉으로 소신 있게 차려 입고 슬슬 걸어 다니면서 자기도 보여주고 남도 구경하는, 모두 주인공이고 모두 관객인 그런 짧은 퍼레이드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색하지 않고, 가르치려 들지 말고, 자연스럽게 즐겨라. 호프 스쿨 할로윈 퍼레이드가 보여준 미국식 행동방식이었다.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 UCSB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