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밭 가꾸기

[성숙의 불씨 714호] 빈민가에서 사역하는 내 친구

양선재 2020. 12. 17. 14:30

빈민가에서 사역하는 내 친구

 

 

 

미국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 있는 템플대학(Temple University) 근처에 '노스 센트럴(north central)'이라는 시내 빈민가가 있다. 미국 내에서 총기 사고가 가장 잦은 곳으로, 주민의 대부분이 흑인인 동네이다. 템플대학 당국에서 자신의 학생들에게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곳이고, 심지어 그곳에서 목회를 하는 미국인 목사도 거주지는 그 동네에 두지 않는 위험한 마을이다. 마약이 만연한 곳이며,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희망을 찾기 어려운 험한 지역이다. 그곳에서 필자의 대학 동기가 예배당도 없이 혼자 목회를 한다.

 

그 느낌의 일부를 전하기 위해서 경험담을 하나 소개하겠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연구년을 갔을 때, 오하이오의 작은 동네에 있는 햄버거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적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모든 시선이 우리 가족에게 쏠리는 것을 느꼈다. "왜 그러지?"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었다. 마치 우리나라 시골 설렁탕집에 흑인 가족 4명이 식사를 하러 들어온 장면과 비슷할 것 같다. 우리를 바라본 사람들이 꼭 적대감을 느끼거나 해코지를 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신기해서 쳐다보는 것일 뿐…. 하지만, 필라델피아의 그 동네는 갱단이 총질을 하고, 그로 인해 사람이 빈번하게 죽어 나가는 곳이다. 그런 척박한 동네에 조그만 동양인 하나가 들어온다면, 이는 눈에 띄는 정도가 아니라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상황이다.

 

그곳에 거처를 마련한 내 친구는 동네 마당을 쓸고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며,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제일 먼저 달려가고 장례식이 열리면 가서 위로를 해주며, 점차 그 동네 사람이 되어간다. 그가 그 동네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거기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꿈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곳 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같이 달성하기 쉽지 않은 답이 나온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갱단에 들어가거나 마약 거래상이 되곤 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이상과 암울한 현실 사이에 실현 가능한 꿈을 제시한다. 여름 캠프를 통해서 그 동네 아이들은 선생을 꿈꾸기도 하고, 기술자를 희망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그처럼 남들을 돕는 일을 하겠다는 아이들도 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또는 갱단 멤버나 마약 거래상이 아닌 다른 직업도 있다는 것을 내 친구를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 된다. 그곳의 어두운 현실을 스스로 밝힐 수 있는 초기 작업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그가 한국에 왔을 때, 총 맞는 게 두렵지는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실제로 총을 들이대고 돈을 빼앗아 간 강도를 만나기도 했고, 그가 사는 집 바로 인근에서 총알이 날아다니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로 담담했다. "어차피 한 번 살다가 가는 인생인데 뭘." 난 그 대답이 너무 멋있게 들렸다. 목숨을 걸고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한편 부럽기도 했다. 현지인들도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곳에서 어둠을 빛으로 밝히려는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우리보다 잘사는 미국에 가서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내 일"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에게는 그 "내 일"이 필라델피아 시내의 험한 동네에 희망을 주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런 문제를 단순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을 때 미국의 선교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에 와서 이런저런 좋은 일을 한 것에 대해서, 그가 지금 조금이나마 갚고 있는 것이라고….

 

그의 이름은 이태후이다. 그가 시작한 일이 어떤 결실로 매듭지어질 것인지에 대해 나는 꽤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내 친구의 사역을 응원해주셨으면 한다. 오늘은 조금 촌스러운 말로 이 글을 맺으려 한다. 나는 그가 내 친구인 것이 참 자랑스럽다. 그를 떠올리며, 나도 그의 수준에 조금이라도 닮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글쓴이 :  김도식   건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 글 내용은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의 공식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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