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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파커 파머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양선재 2017. 10. 2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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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파머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책을 읽자!

2017. 8. 2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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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작가
파커 파머
출판
IVP
발매
2014.12.20.

리뷰보기


한글 제목 보다는 영어 제목의 부제인, education as a spiritual journey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가르치는 자로서 영적인 순례의 길에서 진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그 진리가 실천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이 많은 생각거리들을 준다. 어찌보면, 나도 그렇고 요즘의 "선생"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도 그렇고, 때때로 "지식"만을 전달하는 사람으로만 보여지는 것 같다. 자신이 아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일로 말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서, 앞 부분에서는 가르침과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루고, 뒷부분에서는 그러한 가르침이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라는 말의 의미를 자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뒷부분은 가르치는 자가 기억해야 할 실천방법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저자는 요즘의 학습 공간에서는 너무 긴 독서 과제를 내준다고 염려한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오히려 길지 않은 텍스트를 깊이 있게 완전히 소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가르치는 자가 배우는 자의 위치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르치는 일만 하다 보면, 학생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는 학문의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된다고도 말한다. 이 말은 언젠가 지도교수님이 "나는 배워본 적이 없는 수업을 한다"는 말을 기억나게 했다. 강의를 하기 위해서 스스로 공부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모습을 스스로 보여 주셨는데, 많은 것을 배우게 했다.
성경에서는 "아무나 선생이 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이미 선생이 되었다. 그러면 "아무나"가 되지 않도록, 가르침이 바르게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진리가 바르게 전달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자로서 바르게 서야 되겠다. 파커 파머의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읽고.

"오히려 초월이란 사랑의 영이 우리 실존의 심장부로 뚫고 들어오는 것, 불어 들어오는 것,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세계를 전보다 더 큰 신뢰와 희망을 가지고 보도록 말 그대로 '영을 불어 넣는 것'(in-spiration)이다" (p. 63).

"교사는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 학습자와 학습 대상 사이의 중개자다" (p. 89).

"가르침이란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다" (p. 157).

"말할 뿐 아니라 듣기도 하는 교사, 대답을 줄 뿐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우리의 통찰을 환영하는 교사, 탐구의 끝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탐구의 시작으로서 정보와 이론을 제공해 주는 교사, 학생들에게 서로 도우며 배울 것을 격려하는 교사, 그런 교사와 함께 공부할 때 우리는 배움의 공간이 갖는 힘을 알게 된다" (p. 160).

"교사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주제를 마치 자기 친구를 소개하듯이 학생들에게 소개해야 한다" (p. 214).

"'professor'(교수)라는 단어의 본래적 진정한 의미는 '믿음을 고백하는 (profess) 사람'이다" (p. 231).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온전함에 이르는 책읽기

2017. 6. 12.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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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를 보낸곳 (1)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파커 파머/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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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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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적 원천을 회복하는 참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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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리 안에서의 지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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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truth)나는 언약을 지킬 것을 당신에게 맹세합니다라는 고대 영어 표현에 나오는 언약(troth)’과 동일한 게르만 어근을 가진다.91 사람은 진리라는 단어를 통해, 다른 사람과의 언약으로, 서로를 책임지며 서로를 변화시키는 관계를 맺겠다는 맹세로, 미지의 위험에 직면해서도 신뢰와 믿음을 굳게 하는 관계로 들어간다.92

진리 안에서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인식 대상과의 언약 관계로 들어가는 것, 우리의 지성이 따로 떼어놓은 것을 새로운 앎을 통해 재결합시키는 것이다. 진리 안에서 아는

것이란 혼인 언약을 맺는 것, 자신의 전부를 걸로 그 인식 대상과 약속을 맺는 것으로서, 우리의 온 정성과 관심과 선의를 가지고 맺는 언약이다. 진리 안에서 아는 것은 또한 상대에게 자신을 알도록 허락하는 것, 무릇 참된 관계에 따르기 마련인 모든 도전과 변화에 자신을 여는 것이다. 진정한 앎은 인식 주체와 그 대상을 하나로 결합시킨다.92 진리란, 우리와 진정 다르지만 우리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는 다른 사람 혹은 사물들과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92

진리는 인식 주체에게 인식 대상과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인식 주체와 대상을 모두 독자적인 온전함과 타자성을 가지며, 한쪽이 다른 쪽으로 함몰되지는 않는다. 진정한 앎은 논리가 아니라 사랑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모든 분열된 존재를 재결합시켜 준다.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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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치유를 가져오는 감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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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전통의 중심 주장은 우리 자신과 우리 세계를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시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로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이 움직임을 통해 영과 물질이 하나로 융합되었고 온전하게 되었다. 기독교 영성에 의해 형성된 교육은 세계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반응하는 유기적 몸으로서, 창조성과 자비가 있는 살아 있고 성장하는 공동체로서 인식하게 된다. 65

우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지식은 공동체 속으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관계 속으로 인도해 들이는 지식이다. 치유와 온전함을 가져오는 지식은, 우리가 창조 세계를 볼 뿐 아니라 또한 창조 세계로 하여금 우리를 보도록 허락할 때, 자연을 탐구할 뿐 아니라 또한 자연으로 하여금 우리를 탐구할 것을 허락할 때 비로소 찾아올 것이다. 이것이 완전한 지식이다. 67

바울은 우리에게 지식의 가장 깊은 원천인 사랑을 추구하라고, 그것이 우리의 앎과 존재의 방식을 변화시키도록 하라고 강권한다. 사랑으로 변화된다면, 우리는 자신의 힘을 주위 세계에 오만하게 강제하지 않으며, 세계가 우리를 정복하도록 허락하지도 않는다. 사랑으로 변화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본래 창조된 모습인 공동체를 회복하고 재창조하는 일과 우리를 아시는 그 영 안에서 우리도 세계를 아는 일에 지성을 사용할 것이다.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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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덕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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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성이 발현될 때, 우리는 관찰자가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깊고 온전하게 실재를 알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관계가 실재를 여는 열쇠다. 의식적이고 반성적인 관계에 대한 역량이 커지는 만큼 지식 또한 커진다. 지식 탐구에서 우리의 가장 깊은 소명은, 사물들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변경시키는 데 있지 않다. 가장 깊은 소명은 진리의 다름 이름인 돌봄과 책임성의 관계망에 참여하는 것이다. 관계 맺기는 언제나 쌍방적이다.

알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 배후에 자리하는 가장 참된 열정은 바로 이러한 공동체를 다시 엮어 내려는 갈망, 그 안에서 자신의 합당한 자리를 찾으려는 갈망이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격 전체를 가지고 우리와 세계를 본래의 사랑의 형상으로 재형성시켜 주는 관계들을 추구하는 것이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창조 세계 전체와의 상호성의 관계로 우리의 인격 전체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앎의 주체가 될 뿐 아니라 또한 앎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그런 관계들 속으로 말이다.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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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도에 흠뻑 젖는 영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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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란 관계성의 실천을 의미한다. 기도란 자신과 타인, 인간과 인간 외의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한데 얽혀 있는 저 광대한 생명 공동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기도는 삶의 하나됨을 인정하고 재창조한다. 기도란 내가 그 결합시켜 주는 중심을 향해 나아갈 때 그 중심이 또한 나를 향해 나아온다는 사실에 자신을 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59

우리는 기도를 통해 사랑이 우리 자신을 알도록 허락하며, 자유와 구원을 가져오는 자기 지식을 받아들인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같은 사랑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세계를 아는 법을 배운다. 기도에 흠뻑 젖은 지성은 더 이상 분리와 정복, 조작과 지배를 목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이제 사고는 사랑의 행위, 공동의 유대를 인정하고, 창조된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올바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한 방법이 된다. 60

교육이 기도로 충만하지 않을 때, 즉 교육이 초월성에 중심을 두지 않을 때, 교육은 자아와 세계 사이에 진정하고 자발적인 관계성을 창조하는 데 실패한다.61 우리가 기도 안에서 접하게 되는 생명의 원천으로부터 자아와 세계를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상호 지배의 순환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세계와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이러한 초월성 안에서의 교육은 삶의 외관을 넘어 삶의 숨어 있는 실재들을 보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준다. 사실을 넘어 진리를, 자기 이익을 넘어 자비를, 쇠약한 정열과 지긋지긋한 절망을 넘어 창조 세계 공동체를 갱신하는데 필요한 사랑을 보도록 말이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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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계들의 풍요롭고 복합적인 그물망, ‘진리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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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으로 발견하는 진리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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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서 발원하는 지식의 목표는 깨어진 자아와 세계의 재연합과 재구축이다. 자비에서 나온 지식이 추구하는 바는 창조세계의 착취와 조작이 아니라, 세계와 자신의 화해다. 자비를 동기로 가진 지성은, 마음이 사랑을 향해 뻗어 가듯 지식을 향해 뻗어 간다. 여기서 앎의 행위는 곧 사랑의 행위이며, 타자의 실재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포용하는 행위, 타자로 하여금 자신의 실재 속으로 들어와 그것을 포용하도록 허락하는 행위다. 이러한 앎에서는, 우리는 하나된 공동체의 지체들로서 남을 알고 나를 알리며, 우리의 앎은 공동체의 유대를 다시 엮어 주는 방법이 된다.

영적 전통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혹독한 사랑으로서, 바로 실재의 연결 조직이다. 호기심과 지배욕은 이웃과 세계로부터 우리를 떼어 놓는 지식을 만들어 내며, 제멋대로의 잣대를 가지고 살도록 만든다. 그러나 사랑에서 발원하는 지식은 우리를 삶의 그물망에 연루시킨다. 그 지식은 자비 안에서, 변화시키는 기쁨의 끈과 더불어 엄숙한 책임 의식의 끈으로 앎의 주체와 대상을 함께 묶는다. 그 지식은 우리를 관련성, 상호성, 책임성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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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 있지 않고는 진리를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

사랑 자체가 지식이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알게 된다.” 성 그레고리우스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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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인격적이다라는 말은 단순히 인식 주체의 인격이 이 명제의 일부가 된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인식 대상의 인격성도 관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다. 내가 대상을 알기를 추구할 때 또한 그 대상이 나를 알기를 추구한다. 바로 그것이 사랑의 논리다. 내가 진리를 찾아다닐 뿐만 아니라 진리가 나를 찾아다닌다.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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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순종으로 세워가는 진리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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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배우기 위해서는 그 말들이 드러내 주는 바와 인격적인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으로 그 진리를 따라가야 한다. 이런 교육에서는 교사, 학생, 학과의 관계가 순종의 관계가 된다. ‘순종은 노예적이고 무비판적인 추종을 뜻하지 않는다. ‘순종듣는다는 의미의 라틴어 어근 아우디레에서 나왔다. 순종하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분별할 줄 아는 귀, 당시 상황의 실재에 귀기울일 줄 아는 귀, 모든 실재에 반응하게 해주는 듣기가 필요하다. 112

진리의 공동체를 묶어 주는 기본적인 끈은 순종이다. 자유로운 자아들이 서로 대화 속에서 주의 깊게 듣고 응답하는 것이다. 성경 전반에 걸쳐 앎과 순종적 듣기는 함께 연결되어 있다. 진리라고 불리는 관계에 있다는 것은 듣고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는 진리에 대한 순종을 통해 성취된다.151 순종-존중하는 들음과 충실한 응답-의 끈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다양한 목소리와 젼해에 주의 깊게 귀기울이며 우리에 대한 그들의 요구를 듣는 것이다. 이러한 들음의 끈-이런저런 입장에서 사물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주의 깊고 개방적으로 귀기울이기, 타자를 알 뿐 아니라, 타자에게 그의 관점에서 자신을 알기를 허락하는 듣기-은 우주적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준다. 153

순종은 단순히 듣기를 의미 할 뿐 아니라 아래로부터 듣기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해하다라는 단어의 상식적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것을 그것 아래에 서 있음을 통해 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순종이나 이해 모두, 우리보다 큰 어떤 것, 모두가 의존하고 있는 어떤 것에 자신을 복종시킨다는 뜻을 내포한다. 두 단어 모두 우리 자신을 진리의 공동체의 끈들로 묶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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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화를 통해 참여하는 진리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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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저쪽 바깥이나 여기 안쪽에 있지 않고 둘 모두에 있다. 진리는 우리 사이에 있고 관계 안에 있으며, 독립적이지만 책임적인 자아로 이해되는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대화에서 발견된다. 134 진정한 대화는 타자 안에는 나의 지각과 필요로 환원될 수 없는 독자적인 온전함이 있음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타자를 한 인격으로서 만나는 것은 우주 안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환원 불가능한 실재를 만나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인격성은 수많은 자아들의 내적 상호 운동을 통해 형성된다. 만일 인격으로서 성장하고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 삶 속에 생겨나는 공동체에 의식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135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가지려면, 반드시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 사이의 인격적인 대화, 즉 인식 주체가 세계에 순종으로 귀기울이는 대화가 필요하다.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대상화하는 이 황폐해진 세계에서 이러한 원시적방식의 인격적 앎은 오히려 진보적인 인식 방법임이 판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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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온전함을 추구하는 가르침과 배움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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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개방성, 경계들의 견고함, 환대(배움의 공간에 있는 세 가지 주된 특징)진리에 대한 순종]


지 성

침묵으로

수업 시작하기

-자신을 가라앉히고 중심을 모을 수 있다.

-진리를 회피하게 하는 것들을 물리칠 수 있다.

-통일성을 품게 되고, 언약의 말을 하고 듣는 것이 더 쉬어진다.

감 성

감정을

위한 공간

만들기

-교사의 지배력을 잃으라.

-감정에 대한 민감성이 필수적이다.

-감정은 관계성을 추구한다.

-두려움을 다루어 줌으로써, 서로의 욕구를 깨달을 수 있다.

덕 성

진리의

규칙을

실천하기

-교실은 우리가 세계 안에서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반영한다.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 사이의 언약을 실천한다.

-교실은 세계의 축소판으로, 규칙 아래서 아는 법과 사는 법을 배운다.

영 성

순종으로

응답하기

-인격적으로 신실하게 응답한다.

-상대의 본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내면적 진리에 대한 충실, 순종으로 서로에게 응답해야 한다.

목 표 적

귀기울이는

공간

열어주기

-질문을 통헤 자신의 경험 상대방과 다루고 있는 주제에 귀기울이게 한다.

-질문은 학생들이 삶을 영위하는 더 큰 진리의 공동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합의적 과정 추구하기

-혼자서 생각할 때보다 공동으로 생각할 때 더 똑똑해진다.

-실재 자체의 상호성과 관계성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적극적

3자와

관계 맺기

-암기는 다른 존재들과의 대화로 들어가게 해준다.

-우리가 맺는 직접적인 관계들의 그물망이 풍성해진다.

-시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목소리들도 불러낸다.

긍정적

우정 관계

형성하기

-교사와 학생과 주제 사이에 살아있는 관계를 맺는다.

-학생들을 동등한 동반자로 여기고 그 관계로 초대한다.

-학생들이 낯선 주제를 만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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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의미 있는 삶을 엮어 내는 위대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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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 학습자와 학습 대상 사이의 중개자다. 인식론적 연쇄 사슬에서 살아 있는 고리 역할을 하는 것은, 어떤 이론이 아니라 바로 교사다. 교사가 중개자 역할을 하는 방식은 학생들에게 인식론과 윤리, 즉 앎과 삶에 대한 접근법을 둘 다 전달한다.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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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과 진리로 마음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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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가르침이라도 순종으로 따르지 않는 한 진정한 가르침이 못 된다. 들은 말의 인도를 따르지 않으면 말들이 떠나 버린다. 우리 자신을 내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221 가르침의 변화는 교사의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오직 진리에 의해 탐구되고 변화된 마음만이 새로운 교수 기술과 제도적 변화를 위한 전략의 견실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오직 그러한 마음에서만, 교사들은 제도적 변화를 위해 일하고 기다리며 학문적 삶의 조건들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힘에 대한 욕망, 상호 책임적인 관계에 대한 두려움, 고립된 삶을 지향하는 자기 파괴적인 성향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의 가르침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재형성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태초에 우리의 마음을 형성시켰던 그 사랑과 진리로 하여금 우리의 마음을 알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사랑과 진리가 우리의 마음을 재형성시키도록 하는 훈련을 실천해야 한다.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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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적 덕목을 추구하는 소망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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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이란 자기 바깥의 사실과 메시지에 대한 태도로서... 비판 및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며.. 타자들의 필요와 욕구에 대한 민감성과 반응성이다.” 칸 도이취223

겸손은 타자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할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타자에게 순종하게 만든다.224

영적인 삶이란 역설들의 균형 속에서 사는 삶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타자들의 진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겸손은 우리 자신의 진리를 말할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해 주는 믿음과 창조적인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겸손과 믿음, 이 둘 사이의 긴장은 우리로 하여금 들을 때와 말할 때, 받아들일 때와 거절할 때, 공동체적 요구를 따를 때와 공동체적 요구가 따라 오도록 만들 대를 분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균형을 보장해 주는 것은 오직 영성 훈련이다.

영적인 삶의 균형은 숭상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숭상이란 큰 것보다 작은 것을, 큰 맥락보다 작은 맥락을 더 중요시하기를 거부한다는 뜻이다”226 교사는 자아나 학생들이나 주제의 말을 궁극적으로 숭상해서는 안 된다. 대신 교사는, 우리를 공동체 안에서 만들었고 우리 모두를 순종의 삶으로 끊임없이 다시 부르는, 사랑이 깃든 원천으로부터 오는 살아 있는 말씀만을 숭상해야 한다.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위대한 가르침이 발원하는 원천, 진리에 대한 순종을 실천하는 일의 긴장을 견뎌내는 중심을 향하게 한다. 한쪽 극단을 취함으로써 역설과 긴장을 해소시키려 하지 않고 그것들로 하여금 모든 상극이 화해되는 초월적 사랑을 향해 우리 자신을 열게 한다.

사랑은 우리의 의지적인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은혜의 선물이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할 때,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진리에 의해 침범당하는 모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은혜를 향해 자신을 여는 것이야말로 모든 지식의 발전에서 지극히 중대한 것이었다. 우리가 추구하고 인식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은혜가 우리를 추구하고 인식하고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성 훈련들이 추구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바로 이러한 더 큰 은혜, 늘 사랑의 중심부로부터 우리를 향해 찾아오는 그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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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르침을 위해 스스로 훈련하는 사랑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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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 전공 외의 분야를 공부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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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미지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탐험하는 교사에게는, 겸손과 은혜에 대한 개방성이 자라난다. 그 교사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며, 그 결과 나타나는 지성의 개방성은 학생들과 주제가 신선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한다. 233

교사들은 다시 학생이 됨으로써, 전문 분야를 벗어나는 훈련을 심화시킬 수 있다. 그들의 지성은 다시 넓어지고 새로운 지식을 향한 내적 공간이 창조된다.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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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침묵 속에 거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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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뿐 아니라 우리의 기능 전체, 자아 전체를 관계성의 신비로 이끌어 주는 전통적인 영성 훈련이 추구하는 목표는 우리의 앎과 삶의 전 이성적 지반, 진리가 발원하는 사람의 지반을 드러내는 데 있다. 237 침묵 속에 있으면 이성적 지성은 전력을 다해 진리를 찾아가는 일에 지치게 되고, 대신 우리를 찾아오는 진리에 자신을 겸손히 낮추게 된다. 침묵 속에 있으면 객관적 지식의 장벽은 허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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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독 가운데 있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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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란 일상적인 일, 의존하는 대상, 여러 가지 역할로부터 가능한 한 거리를 둔다는 의미다. 고독은 공동체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사랑의 심장부를 향해 우리를 열어 준다. 반면 공동체 안에서의 삶은 우리가 고독 가운데서 접촉하는 그 사랑을 드러내 준다.245

공동체란, 각자자신의 정체성과 독자적인 온전함을 가진 개별적 인격들, 고독한 자아들 사이의 관계의 그물망이다.246

자유와 치유를 가져오는 고독 훈련은 그저 끈기를 가질 것을, 인내를 가지고 자신과 대면할 것을, 자신이 세계에 투사했던 것들을 거두어 그 원천을 자신 안에서 발견할 대 찾아오는 고통을 견뎌낼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고독은 결국 평온한 은혜의 선물이다, 우리가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할 때 늘 찾아오는 선물, 즉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은혜를 제공한다. 우리는 스스로 고독 속에서 앎의 대상이 되도록 할 때, 사랑이 우리를 알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발견의 고통 너머에 우리를 정죄하지 않고 우리를 자신에게로 부르는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자기기만을 물리칠 수 있는 공간, 우리가 진리에 의해 변화되도록 하는 공간을 창조한다.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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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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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뿐 아니라 듣기도 하는 교사, 대답을 줄 뿐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우리의 통찰을 환영하는 교사, 탐구의 끝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탐구의 시작으로서

정보와 이론을 제공해 주는 교사, 학생들에게 서로 도우며 배울 것을 격려하는 교사,

그런 교사와 함께 공부 할 때 우리는 배움의 공간이 갖는 힘을 알게 된다.”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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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라는 주제를 영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여 제시하고 있는 저자의 글을 너무 심오하여 감히 접근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참된 교육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러한 교육을 할 수 있을지 고찰하게 하는 이 책은 교사의 입장에서 엄청난 반성을 하게 하는 글이었다.

그래도 저자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이 있다. 바로 기도이다. “기도 속에서 우리는, 만물이 비롯하고 만물이 되돌아가며 만물로 관계를 맺게 하시는 초월적 영과 접촉하게 된다.”

저자는 교육의 목적이 한 사람에게, 자신과 세계의 관련성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그리고 자비적으로 정의하는 법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이런 온전한 시각이 회복되기 위해서 지성과 영혼이 하나가 되고, 교사와 학습자와 주제가 살아 있는 공동체적인 활동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완전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지식의 가장 깊은 원천은 사랑이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앎과 존재의 방식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기도 충만한 교육’, ‘인격적 돌봄과 충실성의 관계’, ‘순종으로 응답하기등등, 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내 마음을 맴돌고 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연결됨 없이 그렇게 있다가 사라져갈 것만 같다. 열심히 배우지만 배운 것이 없고, 열심히 가르치고 있지만 진정한 가르침이 없는 것은 왜 일까? 우리를 삶의 모든 것과 충실한 관계를 맺도록 하는 참된 지식을 위해 성령에 의해 창조되는 공간이 발견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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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작가
파커 파머
출판
IVP
발매
201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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