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교육/7. 초등교육

[스크랩]미국교육이 축구를 강조하는 이유/글 조윤경

양선재 2015. 10. 3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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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크레존 담당자
  • 등록일2015.10.16
  • 조회수985

(18) 미국교육이 축구를 강조하는 이유

 

 

“이번 주 토요일에 예원이랑 크리스티나의 축구 시합 함께 보러 갈래요?”
크리스티나 엄마의 전화였다. 나는 약간 망설였다. 이상 기온으로 이곳은 아직 너무나 더웠다. 대낮에는 29도, 30도를 웃돌았다(10월인데 말이다. 산타 바바라는 1년 내내 온화한 기후라고 해서 이곳에서의 유토피아적인 삶을 꿈꾸었는데 완전히 속았다). 이 뙤약볕에 야외에서 축구시합 관람이라니... 그것도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들의 시합이 뭐 그리 재미있으랴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이들이 이토록 열을 올리는 축구 활동의 실체가. 그래서 가보기로 했다.

 

 

시합은 오후 2시에 있었다. 전용 경기장에서 시합을 하는데 워낙 많은 인파가 몰려서 주차하기가 힘드니 자기 차로 가자고 했다. 우리는 의자 두 개와 물만 챙기고 출발했다. 크리스티나 아빠가 운전하는 차에 엄마, 크리스티나, 쌍둥이 형제 찰스, 우리 모녀가 탔다. 크리스티나는 ‘블랙 매직’이라고 씌어 있는 검은 유니폼에 빨간 머리띠, 알록달록 무지개색 양말을 신어 축구선수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도로는 매우 붐볐다. 차들이 거의 줄을 서다시피하면서 경기장으로 간신히 움직이고 있었다.
“매 시간마다 시합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복잡해요.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쭉 경기가 있거든요.” 크리스티나 엄마의 설명이었다.
‘와... 이 많은 가족들이 주말마다 이렇게 경기장을 향한단 말이지... 놀랍다 놀라워.’

 

 

크리스티나 아빠가 주차할 곳을 찾아 빙빙 도는 사이 우리는 먼저 내렸다. 드넓은 파란 천연 잔디구장 곳곳에서 시합이 벌어지고 있었다. 경기장 가장자리에 어린 선수들의 가족들이 파라솔을 꽂아 놓고 앉아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었다.

사진1

[사진1_경기를 응원하는 가족들]

 

“저 시합이 끝나면 우리 시합이니까 여기서 좀 기다리죠. 끝나자마자 얼른 가운데에 가서 우리 파라솔을 꽂아요.”
크리스티나 엄마는 파라솔을 쫙 펴더니 먹이를 노리는 어미새의 눈으로 주위를 날카롭게 살폈다. “마침 아는 엄마가 있어요. 저기에 파라솔을 꽂고 저 집 아이 팀을 같이 응원하다가 시합 끝나면 우리가 저 자리를 차지해요.” 그러더니 “달려라 새미, 골을 잡아 새미, 잘한다 새미” 하면서 큰 소리로 그 집 아이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런 다이애나의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대한민국의 극성 엄마를 떠올리게 해서 무척 친근했다.

사진2

사진3

사진4

[사진2, 3, 4_경기를 준비하는 블랙 매직 선수들]

 

우리 블랙 매직의 상대팀은 머쉬멜로우였다. 그들은 형광빛 도는 주황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나는 유니폼을 입은 두 팀의 여자아이들이 그저 모두 귀엽기만 했다. 각자 진지한 표정으로 공을 차며 몸을 풀고 있는 모습도 귀엽고, “이건 연습이 아니야. 실전이야. 필드에서 절대 속도를 늦추지 마”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코치의 모습도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래서 두 팀 모두 잘하는 선수들이 많아서 이번 경기가 특히 빅매치라고 말하는 크리스티나 엄마의 설명을 그냥 흘려들었다.

 

 

그런데 시합이 시작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와. 이건 그냥 재미삼아 하는 아이들의 시합이 아니었다. 양 팀의 선수들은 쏜살같이 필드를 질주했다. 패스도 정확하고, 상대편의 허점을 공략할 줄도 알았다. 슛도 비교적 정확했다.
순식간에 상대팀에게 한 골을 허용하자 블랙 매직팀의 코치가 쉰 목소리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속도를 늦추지 마. 패스해. 달려.”
고함을 지르는 것은 코치만이 아니었다. 양쪽 팀 부모들 또한 질세라 큰 소리로 아이들을 응원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으니 응원은 응원인데 단순한 응원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잘한다 패서디니. 공을 놓치지 마.”
“에밀리가 비어있어. 그리로 패스 해.”
“뺏기지 마. 가지고 있어. 가지고 있어.”
“잘한다 잘한다. 달려 달려 달려. 슛~~”
오후 두 시를 넘어선 시각,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었다. 아이들은 헐떡거리며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들은 서부 개척시대에 땅을 차지하러 용맹하게 싸우는 전사들을 지휘하는 장수처럼 아이들을 가혹하게 몰아 부치고 있었다.

사진5

사진6

[사진5,6_시합 장면]

 

아이들의 시합이라 그런지 쿼터제로 조금 짧게 네 번의 경기를 치뤘고, 중간에 세 번의 쉬는 시간이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수박을 먹이고, 얼음을 입에 넣어주었다. 마치 권투선수에게 하듯 얼음물을 딸의 머리위로 부어주며 파이팅을 외치는 아빠도 있었다.

 

스코어 4:4라는 팽팽한 접전 끝에 어느덧 마지막 경기가 재개 되었다. 아이들의 움직임이 지쳐갈수록 “속도를 늦추지 마라”라는 코치의 외침은 더 높아져만 갔다. 그 순간 한 아이가 태클을 당해 쓰러져서 시합이 중단되었다. 많이 아픈지 꼼짝을 못했다. 심하게 다치지 않았나 걱정이 되었다. 아이의 엄마가 경기장으로 뛰어 갔다. 조금 있다가 그 아이가 다시 일어나니 모든 부모-관중들이 아무 말 없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 아이는 경기에 계속 참여했다. 나는 그 냉정한 격려의 박수에 소름이 돋았다.
‘이 매 주 있는 경기가 뭐라고 다친 애를 계속 시합에 뛰게 한단 말인가.’
‘이 축구 경기가 뭐라고 이 모든 부모들이 저렇게 결사적으로 응원하는가.’

 

 

블랙 매직팀이 만만치 않게 몰아붙였지만 상대방에게 연속 두 골을 허용하면서 시합이 끝났다. 끝나자마자 양 팀 부모들이 일제히 일어나더니 손으로 아치를 만들었다. 그 터널 안으로 선수들이 줄지어 통과하는 동안 부모들은 모두에게 잘 싸웠다는 격려의 말을 전했다. 이 광경은 재밌고 다정해서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격렬하고 무섭게 응원하던 부모들의 모습이 너무나 강력하게 남아 있었다.

사진7

[사진7_양 손으로 터널을 만들어 선수들을 격려하는 부모들]

 

미국의 사커맘, 사커대디들은 왜 자식들에게 공부 대신 축구를 시키는가? 나의 질문에 대해 미국에 오래 살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교민들은 

“자기들도 그렇게 자라서 그 즐거움을 아는 데다 축구가 자존감이나 팀웍을 배우는데 좋다고 생각하니까요”
“축구를 하면 끈끈해지고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으니까요”
“이 아이들은 축구를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기 위해 시간 매니지먼트 교육도 함께 받아요. 그래서 꼭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대학에 들어갈 때 그런 면에서 높이 평가를 받으니까요.”
라고 대답했다.
사커맘 크리스티나 엄마 다이애나의 대답은 밸런스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은 다이애나 설명의 요지다.
“나는 지적 능력과 육체적 능력의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축구는 그 밸런스를 잡아주는데 아주 좋은 운동이다. 나는 크리스티나가 일류대학을 들어가는 게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를 봐라. 꼭 일류대학을 나와야 성공하는 거 아니지 않는가. 성공을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매일 10분씩 명상하게 한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데 명상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될수록 많은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축구는 인생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조사해보니 미국에서 여자 축구가 유행이 된 것은 ‘타이틀 나인 Title IX’ 조항의 덕이 컸다. 이 조항은 미국 정부가 1972년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전 과목의 남녀평등 교육을 강조한 것인데, 이를 계기로 여자축구를 비롯한 여자 스포츠가 폭발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미국 여자아이들의 롤모델 1위라고 하는 미국의 전설적인 여자축구 선수 미아 햄Mia Hamm은 여학생들에게 미치는 축구의 교육적 효과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공을 패스하거나 슛을 하거나 다른 동작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집중합니다. 그러다보면 갑자기 어떤 스위치가 켜지면서 그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소녀들 안에서 자기에 대한 신뢰가 자라는 걸 지켜보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남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일들을 하는 걸 격려받기 때문에 특히 우리 딸들에게 축구를 통해 성취하는 기회들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이 모든 자료들은 미국의 온 가족들이 주말마다 열 일 제치고 필드로 향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 시합을 보면서 그들의 DNA에 내재한 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을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이유 말이다.
척박한 땅을 일구고 용맹하게 싸워서 오늘날 세계 제 1의 대국이 된 미국이 축구를 통해 전형적인 미국인의 정수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 건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이 어린 여자아이들은 인생의 축소판인 작은 필드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들이 온 몸으로 달리고 부딪치고 넘어지면서 뺏고 뺏기고 넘겨주고 넘겨받는 공은 그들에게 주어진 인생의 기회였다. 그들은 이 철저한 개인주의의 나라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나가면서도 팀과 협력하여 상대를 이기는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남들보다 앞서 출발하기 위해 창백한 얼굴로 선행교육을 받고 있을 때, 이곳 아이들은 끝까지 남는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씩씩하고 강인하게 쟁취해내는 지혜를 배우고 있었다.

 

 

시합에 졌다고 우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크리스티나 엄마가 위로의 말을 하자 크리스티나는 씩씩한 얼굴로 “I’m Okay”라고 대답했다. 나의 딸이 다가가 “너 정말 잘 하더라. 멋졌어” 하니 웃으며 “고마워. 시합 재밌게 봤니?”라고 대답하는 크리스티나가 참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시합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크리스티나 엄마가 오후에 뭐할 거냐고 물었다. 그냥 쉴 거라고 했더니
“집 더운데 좀비처럼 늘어져 있으면 뭐하겠어요. 바닷가에서 노는 게 낫지. 생각 있으면 지난 번에 갔던 비치로 나와요”했다. 응원만 했는데도 지쳐서 ‘집에 가자마자 침대에 좀 누워야지...’ 생각했던 나에게 매우 강력한 한 방이었다. 비치에 갔다가 저녁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 후 이 못말리는 사커맘, 사커대디 부부는 다음날 아침 10시에 열리는 아들 찰스의 야구시합 응원을 간다고 했다. 경기장 가까이 도달하면 다이애나는 오늘 크리스티나에게 들려준 것처럼 찰스에게도 팝송 “Hall of Fame”을 크게 틀어주면서 씩씩하게 따라 부르겠지.

 

 

“Yeah, you could be the greatest
그래, 넌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어

You can be the best
넌 최고가 될 수 있어

You could beat the world
넌 세상을 이길 수 있어

Dont’ wait for luck
행운을 기다리지 마

Dedicate yourself
네 자신을 바쳐

And you can find yourself
standing in the hall of fame
그러면 넌 명예의 전당에 서 있는
네 자신을 볼 수 있어

And the world’s gonna know your name
그러면 전 세계가 네 이름을 알게 될 거야”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 UCSB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