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교육/ 교육 일반

[스크랩]이중언어는 두 개의 국어가 아니다

양선재 2015. 10. 7. 21:26

각계 교육 전문가가 전 세계 창의‧인성교육 동향 및 현장 중심의 창의적 체험활동 정보를 제공합니다.

  • 작성자크레존 담당자
  • 등록일2015.10.05
  • 조회수396

(15) 조윤경이 만난 사람_ 이중언어 전공 이원아씨의 글 2

 

이중언어는 두 개의 국어가 아니다

 

최근 한국 방송 프로그램에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출연자들이 자주 눈에 띱니다. 미국에서 다년 간 한국어를 가르쳐 본 경험도 있고, 제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이 관심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쉽지 않은 주제로 한국어로 토론하는 한 방송은 마치 연구 자료를 분석하듯이 보게됩니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어른이 되어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출연자들의 한국어 수준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토론이 가능한 이유는 모든 출연자들이 모국어의 완전한 습득과 세상에 대한 지식이 이미 형성된 성인 이중언어자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미취학 아동이나 저학년 아이들이 이중언어 환경이나, 교육에 노출되었을 때는 어른의 이중언어 발달과는 전혀 다른 과정을 거칩니다. 언어 뿐만아니라 전반적인 발달이나 세상에 대해서 배우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예로, 둘째 아이가 저에게 했던 재미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집에서는 ‘현우’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둘째 아이는 만 3살 반 프리스쿨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학교에서는 ‘Justin’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만난 ‘Justin’이라는 이름을 가진 백인 아이의 다른 이름도 ‘현우’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제 추측은 ‘3살 반의 현우에겐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두 개의 이름이 있다는 가설이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중언어 환경은 아이의 인지 발달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언어 발달과 함께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중언어 환경에 접한 아이들의 언어 발달을 한 언어만을 쓰는 아이들과 비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아이들의 단어 습득을 이야기 할 때 mutual exclusivity라는 가설을 이용해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Book과 pencil을 아는 아이가 있다는 가정 하에, 선생님이 book, pencil, 그리고 eraser를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말합니다. “Look at the eraser.” 아이는 그 정체 불명의 물건이 정확하게 eraser인지 몰랐지만, 다른 물건은 확실하게 book이고 pencil임을 알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eraser를 보게 되는데, 이 과정 속에서 아이는 새로운 단어인 eraser를 배우게 된다는 가설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모든 것에 자신의 이름처럼 두 개의 이름이 있고, 그 두 가지를 알아가는 것이 학습의 방법이었던 현우같은 이중언어자들에게 이러한 mutual exclusivity의 가설은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을뿐더러, 본인들이 속한 언어 환경에 따라 어떤 개념은 한국어로, 어떤 개념은 영어로 가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한 언어의 단어 실력만 평가해서 그 언어가 ‘딸린다’는 단정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중언어 발달자들이 이중언어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아 그들만의 특수한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이들이 하는 ‘codeswitching’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두 언어를 섞어 쓰는 것인데, 문장 안에서 다른 언어를 섞어 쓰거나, 한 문장은 영어로 다음 문장은 한국어로 말하는 식의 형태로 codeswitching을 합니다. 부끄럽게도 저희 아이들이 영어문장 속에 자주 애용하는 한국어 단어는 화장실 관련 단어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주로 한국어를 접하는 공간이 가정이다 보니, 개인적인 용어들은 주로 한국어가 많습니다. 어느 날 작은 아이가 차 안에서 방구를 끼자, 당시 유치원에 다니고 있던 큰 아이가 “엄마, Justin 방구ed.”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쭉 자라온 아이들의 단어들 중에서 개인적이고 가족에 관한 것들은 대부분이 한국어임을 볼 때, 단어 습득의 과정은 한 가지 언어만 접하고 사는 아이들하고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 언어가 언어환경에 따라서 한 문장에 공존할 때, 이중언어 발달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이렇게 언어를 섞어 쓰는 이유가 언어 실력이 모자라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문장에서도 영어 발음 법칙을 잘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줍니다. 영어 과거 시제는 –ed라는 스펠링이지만, 동사의 끝음에 따라서 발음이 달라집니다. 자음으로 끝나는 동사인 ‘walk’의 ‘walked’는 [t] 로 소리나고 모음으로 끝나는 ‘dance’의 ‘danced’는 [d]로 발음합니다. 큰 아이는 모음으로 끝나는 ‘방구’ 의 ‘방구ed’를 영어 발음 규칙에 맞춰 [d]로 발음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영어 환경에 노출된 지 6개월 남짓 지나서 했던 codeswitching이라서 영어 발음 법칙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주어진 언어 환경에서 두 가지를 언어를 잘 배우고 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언어 환경에 영향은 단순히 단어 습득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문법을 뛰어 넘어 언어가 실제 환경에서 어떻게 쓰이는 지에 대한 pragmatics에서도 독특한 발화를 만들어 냅니다. 미국에 살다 보니 영어 환경에 절대적으로 많이 노출되고 한국어는 대부분 제가 아이들에게 하는 반말에 노출되다 보니 당시 일곱살 쯤 된 큰 아이가 한국에 가서 할아버지와 다과를 하던 도중 “할아버지, 너도 이거 먹어.” 라고 해서 저를 아주 놀래킨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영어로 “Grandpa, you eat this.”라고 하면서 할아버지에게 음식을 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주어진 이중언어의 환경에서 일곱살의 꼬마가 최선을 다해서 구사한 한국어 문장이었던 것입니다. 저에게 경각심을 일으킨 이 사건으로 인해 저는 어른에겐 대명사 ‘너’를 절대 쓸 수 없음을, 그리고 일반적으로 2인칭 대명사는 거의 사용 되지 않음을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큰 아이는 제가 눈 앞에 있을 때도 “Does 엄마 did her 숙제?” 라는 ‘맞지 않는’ 영어 문장을 구사합니다. 앞에 있는 2인칭 청자에게 3인칭 소유대명사와 동사형을 쓰는 것은 엄마를 ‘you’라고 부를 수 없는 한국어의 pragmatics가 적용되었다고 분석됨과 동시에, 한국인의 정서상 저에게도 ‘you’로 불리는 거 보다, 3인칭문법이 적용되는 것이 틴에이저인 아들이 저를 더 존중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모자간의 관계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IMG_0496

마지막으로 이중언어 환경에 노출되어 자라나는 아이들은 담화 (discourse)를 구성하는 방법도 그들만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 보시는 사진은 큰 아이로부터 어머니날 (Mother’s day)에 받은 카드입니다. 제가 아이들이 한국어로 쓰는 것을 많이 기뻐하는 것을 알고 고맙게도 한국어로 써 주었습니다. 이중언어 환경에 노출되어 자라나고 있지만, 역시 영어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영어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담화의 구성입니다.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부모님께 감사 카드를 쓸 때 어떤 내용을 포함하는 지를 생각해 보면 저희 아이가 적은 내용들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엄마는 너무 참을성 있는 엄마 돼 주셨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부분은 한국문화와 다른 점이 확연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에게 감사편지를 쓸 때 참을성에 대한 언급은 보통 감사 카드에 들어갈 내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 문화에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감사카드를 쓸 때 “ Thank you for being patient with me.” 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저도 이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런 감사 카드를 받은 적도 여러번 있고요. 교육학과 수업 중에 선생님의 중요한 자질이 뭐냐고 학생들에게 물으면 ‘patience’ 는 꼭 언급됩니다. 미국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와 선생을 포함해 가르침의 위치의 있는 사람들의 자질중의 하나가 참을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 언어에 노출이 되어서 자라는 아이들은 간단한 단어습득에서 부터 담화 구성까지 그들이 속한 언어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그들만의 이중언어를 만들어냅니다.

 

이미 영어는 전 세계적으로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보다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어도 전 세계적으로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자라나는 이중언어자들은 어떤 언어 환경에서든지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유연성이라는 것은 언어를 쓰고 있는 상황과 청자의 언어적 배경들을 고려해 자신의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말하겠죠. 엄마로써의 이런 경험들이 박사과정 학생으로서의 관점을 형성한 것 같습니다. 이중언어 교육이 단순히 단어와 문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두 언어를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다른 문화를 배워서 어떤 문화를 접하든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글로벌 시민으로 키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이중언어 발달 중에 보여주는 특성들을 잘 관찰하고, 관찰된 패턴을 바탕으로 교육 방향과 커리큘럼을 마련하는 것을 중심으로 오늘도 열심히 연구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원아 (UCSB 교육학과 박사과정)